中 ‘격앙→각국 냉정’ 무게중심 이동 왜
한국과 미국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대해 봉쇄 수준의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중국에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은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제재에는 나설 수 없다’는 쪽으로 입장을 굳히고 있다. 이 같은 원칙에 따라 북·중 교역 및 관광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조치도 아직 내놓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10일 “북한 선박의 항구 입항을 금지해 교역을 끊고, 북한과 거래하는 기업과 금융기관에 제재를 가하는 ‘세컨더리 보이콧’ 등에 중국이 찬성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면서 “중국이 유엔 주도의 국제 제재 자체는 반대하지 않겠지만,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제재안에 대해서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반대할 것이고 독자적인 제재에도 나설 것 같지 않다”고 전망했다. 다른 외교 소식통 역시 “한국과 미국은 군사 대치 등 긴장 고조를 감내하면서라도 북한 핵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중국은 핵실험만큼 남북 긴장 고조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8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중국 왕이(王毅) 외교부장의 통화에서도 한·중 간 시각차가 드러났다. 왕이 부장은 “중국은 일관되게 한반도 비핵화 실현, 한반도 평화와 안정 수호,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는 원칙론만 강조해 우리 정부의 ‘강력한 제재’와는 거리가 멀었다.
실제로 핵실험 당일 ‘강력 반대’라는 표현을 써가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던 중국 정부의 입장은 ‘각국의 냉정’과 ‘긴장 조성 반대’로 빠르게 무게 중심이 바뀌고 있다. 외교 입장을 대변하는 관영 환구시보는 10일 기사와 사설, 전문가 논평 등을 총동원해 “북핵 위기는 미국의 대북한 정책 실패에서 비롯됐다”는 논리를 폈다.
랴오닝성 사회과학연구원 류차오 박사는 “미국이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오히려 북한을 압박하는 정책을 펴온 게 위기를 심화시킨 근본 원인”이라면서 “뒷짐만 지고 있다가 이제 와서 ‘중국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은 무례하고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북·중 무역과 관광도 예전처럼 이뤄지고 있다. 서울신문이 이날 베이징과 선양에 있는 북한 관광 전문 여행사 5곳을 취재한 결과 모두 “북한 여행에 대해 특별한 지시가 내려오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매주 10~30명의 관광객을 모아 북한으로 가는 한 여행사 관리자는 “다음주 관광에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 “북한 비자도 예정대로 잘 발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신의주와 인접한 단둥에서 무역업을 하는 한 인사는 “통관이 강화되고 밀무역에 대한 감시가 강화된 느낌은 들지만, 교역은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사업가는 “북한이 중국을 향해 대포를 쏘지 않는 한 중국이 교역을 차단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북한을 낭떠러지로 떨어뜨리면 북한과 무역을 하며 살아가는 중국인들도 생계가 끊기는데, 한국과 미국의 바람대로 중국 정부가 무역을 차단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중국 정부는 북한 핵실험으로 인한 주민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환경보호부는 지난 7일 “옌지, 훈춘, 창바이 등 접경지역에서 방사능 유출이 없었다”고 발표한 데 이어 10일에는 “핵실험으로 인한 스모그(핵무염·核霧染) 발생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 밝혔다.
한편 북한은 지난해 10월 열린 노동당 창당 70돌 열병식 및 군중대회 관련 기록영화에서 당시 중국 대표로 참석한 류윈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나오는 장면을 삭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이 지난 9일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한 기록영화에는 행사 주석단에 서 있는 김정은을 비추는 동안 왼편에 서 있던 류윈산의 모습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류윈산의 당 창건 70주년 열병식 참석으로 한동안 얼어붙었다 해빙 조짐을 보였던 북·중관계가 핵실험으로 경색되면서 냉랭한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서울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2016-01-1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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