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전선내 갈등…무르시 찬반세력 충돌 지속

이집트가 시민저항에 편승한 군부가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강제 축출한 이후 더욱 극심한 내분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무르시 타도를 기치로 손 잡았던 야권 내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 세속·자유주의 진영이 과도정부 총리 지명을 놓고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무르시 찬반 세력의 극한 대립도 계속되는 가운데, 혼란이 심화하면서 이집트 상황이 내전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 이슬람 근본주의-세속주의 불안한 동거 ‘파열음’

무르시를 축출한 야권 내에는 이슬람 근본주의 ‘살라피스트’ 정당인 알 누르당과 세속주의·자유주의·좌파 세력이 함께 느슨한 전선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무르시 이후 체제를 구성해야 할 단계가 오자 이들 사이의 이념 차도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알 누르당은 아들리 만수르 임시 대통령이 물망에 올린 과도정부 총리 후보자를 두 명째 퇴짜놓고 나섰다.

열렬한 세속주의자로 알려진 무함마드 엘바라데이(71)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과 중도좌파 성향의 경제전문가인 지아드 바하-엘딘(48) 변호사를 모두 거부한 것이다.

알 누르당의 유니스 마키운 대표는 “이들 둘은 모두 범야권그룹인 구국전선(NSF) 소속”이라며 “이번에도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생각에 우려스럽다”고 주장했다.

표면적으로는 ‘정치적 중립’을 내세웠지만, 알 누르당은 지지층으로부터 세속주의를 지지하는 것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무슬림형제단 쪽에서는 알 누르당 당원 일부가 이미 무르시 지지 집회에 합류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슬람주의 세력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알 누르당과의 연대를 유지하려던 세속주의 진영은 불편한 심사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AP통신은 세속주의 진영이 엘바라데이의 과도정부 총리 지명이 거부됐다는 데 격분했다고 전했다.

청년층 비중이 큰 반정부세력 연합체 ‘타마로드’(반란)는 알 누르당이 “협박과 강요(arm-twisting)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알 누르당이 연합에서 이탈하게 된다면 이집트 내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 세력 간 갈등은 더욱 전면화될 전망이다.

AP통신은 “새로운 리더십 아래 광범위한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 무르시 찬반세력 극한대립 지속…내전 우려까지

무르시 지지파와 반대파의 ‘평행선’도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7일(현지시간) 수도 카이로와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 등 이집트 대도시에서는 무르시 찬반 세력이 각기 집결해 시위를 벌였다.

아직 대규모 무력충돌은 벌어지지 않았으나, 알렉산드리아에서는 거리시위 와중에 총성이 울리기도 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무르시의 권력 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은 군부가 이집트를 전체주의 국가로 만들려고 한다며 ‘민주주의에 대한 쿠데타’를 다시 전복시킬 때까지 시위를 벌이겠다고 공언했다.

무슬림형제단의 고위 인사 사드 에마라는 새 집권세력이 “모두 우리를 배신했기 때문에” 이들과 전혀 협상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무르시 반대 세력은 이번 사태가 ‘쿠데타’라는 시각에 강하게 반발하며 종전 반정부시위 중심지인 타흐리르 광장을 중심으로 시위를 계속했다.

특히 이들의 집회는 반미시위로도 번지는 양상이다. 일부 시위대는 미국이 무르시를 암묵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미국 언론이 이번 일을 쿠데타로 단정 짓고 있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미국은 부끄러운 줄 알라, 쿠데타가 아니라 혁명이다”라는 구호가 나왔고, ‘오바마는 9·11을 일으킨 테러리스트들을 지지하고 있다’는 현수막도 등장했다.

법원이 반(反) 무르시 운동가들에게 대거 무죄를 선고하는 등 민심을 안정시키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큰 영향력은 없었다.

관영 메나통신(MENA)은 카이로 형사법원이 무르시 반대 집회에서 폭력을 선동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유명 블로거 아흐마드 두마 등 활동가 11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보도했다.

이대로 여러 이념세력 간 갈등이 격화되면 이집트가 내전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집트의 달리아 제인 변호사는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군부가 무르시 찬반 세력 간 갈등을 조정하는 데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며 “이집트가 내전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를 방문한 자리에서 “시리아는 이미 내전에 휩싸였고 슬픈 얘기지만 이집트도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내전화(化) 가능성을 거론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