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단통법의 근거/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열린세상] 단통법의 근거/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입력 2014-11-08 00:00
수정 2014-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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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줄여서 단통법을 놓고 찬반 양론이 뜨거운 것 같다. 단통법의 논란이 있기 전에 개인적으로 정말 궁금하게 생각한 것이 있었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 근처의 신촌 거리를 가다 보면 너무도 많은 이동통신사 대리점들이 있다. 이동통신사가 세 곳이므로 300m 정도 되는 신촌 거리에 3~4개의 대리점이 존재할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검색해 보니 13개의 이동통신사 대리점이 몰려 있는 것이었다. 범위를 조금 넓게 잡아서 신촌에서 500m 반경 내의 대리점들을 검색해 보면 20곳을 훌쩍 넘긴 숫자의 대리점이 몰려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마디로 이동통신사 대리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셈이다. 이동통신사 입장에서는 자주 통신사를 바꾸는 젊은 층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므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대리점을 많이 세운 것이겠지만, 불과 3개의 회사가 300m의 거리에 13개의 대리점을 세운 것은 이런 이유로 충분히 설명되지 못하는 부분이 남아 있다.

대한민국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대부분은 몇 년이 지나도 계속 한 회사를 이용한다. 한마디로 자신이 이용하는 통신사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것이다. 하지만 일부 소비자들은 자주 통신사를 바꾸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통신사라는 기업 입장에서는 충성심이 높아서 좀처럼 경쟁 회사로 이동하지 않는 소비자들보다 자주 거래 대상을 바꾸는 소비자들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따라서 이동성이 강한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이 오히려 당연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산업에서 이동성이 강한 소비자들에게 주는 혜택은 낮은 가격이다. 중요한 고객을 경쟁 회사에서 자신의 회사로 모시기 위해서는 역시 낮은 가격으로 승부를 하는 것이 정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동통신사들은 모든 소비자들에게 동일한 가격을 부여하고 있다. 다만 자신들에게 중요한 이동성이 높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가격 대신 일종의 경품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단말기 보조금이다.

독점이 나쁜 이유는 경쟁자가 없어서 가격을 높이 책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경쟁이 있으면 고객 유치를 위해 가격을 앞다투어 내리다 보니 소비자들은 낮은 가격으로 이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경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을 내리지 않고 다만 경품으로 소비자들을 끌어오려고 한다면 이는 해당 기업들이 실제로 경쟁하고 있지 않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상황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충성심이 높은 고객들은 높은 통신비를 지불하고 이동통신사들은 이를 단말기라는 경품 형태로 이동성이 높은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이 경우 단말기를 자주 교환하는 것이 무엇인가 한국 경제에 큰 기여를 한다면 현재의 상황도 그 나름의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단말기를 자주 교환하는 소비자층은 새로 구입한 단말기를 이용해 어떤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을까. 통신사를 자주 바꾸지 않는 충성심이 높은 소비자들 중에는 생산 활동에 종사하느라 너무 바빠서 할인되는 단말기를 찾아다니기보다는 그냥 정가를 주고 단말기를 구입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고, 보조금으로 할인이 많이 되는 단말기를 찾아다니는 소비자들은 나름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계층일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새로운 단말기로 별로 생산적인 활동을 할 것 같지 않은 소비자들이라는 의미다.

단통법 시행 이후 중고폰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는 것만 보아도 지나친 단말기 할인으로 싼 맛에 단말기를 자주 교체하던 소비자들이 단말기를 정가에 사야 하는 상황이 되자 잦은 교체를 포기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부분의 경품처럼 단말기도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닌 것이다. 아무리 소비가 미덕인 시대라고 하더라도 필요도 없는 단말기를 새로 구입하도록 권장하는 식의 낭비는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단통법이 잘 정착돼 300m에 13개의 대리점이 공존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해소됐으면 한다. 하지만 단통법의 목적은 단말기에 대한 낭비를 막는 것과 동시에 이렇게 낭비되고 있는 돈을 가격 인하 쪽으로 돌리려는 것이다. 이동통신비 인하를 위한 기업들의 노력과 정부 당국의 감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다.
2014-11-0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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