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사람의 역할과 의태현상/박광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열린세상] 사람의 역할과 의태현상/박광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입력 2011-10-04 00:00
수정 2011-10-0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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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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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나 소임이다. 사람의 경우 세상에 올 때부터 맡은 역할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가지고 오는 근원적인 기운 역시 천태만상이며 이것에 따라 능력의 차이를 보이게 된다. 능력은 마음의 목적 의지에 따라 일생 동안 좋든 싫든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세계에서 역할에 맞게 키워지고 다듬어진다. 사람의 역할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며 죽을 때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부딪치며 순응과 기피를 통해 자기의 능력 속에 인간관계를 녹여 나가는 담금질과 같다. 역할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잉태되어 키워진다.

역할은 각자에게 주어진 몫에 따라 갖고 온 기운의 크기, 즉 능력에 의하여 좌우된다. 사람이 신이 아닌 이상 능력은 한계가 있고 이것과 연계된 역할도 일정 부분 제한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능력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스스로 찾아서 키워야 하는 숙제가 각자에게 있다. 역할을 다하기 위한 능력의 힘은 우선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를 구비했을 때 상대방의 신뢰를 바탕으로 추진동력이 생긴다. 현재 하는 일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달려온 길이요 역할이며 타인으로부터 얻은 동력으로 진화 중인 자기 모습이다. 역할은 사람이 살아야 할 이유임과 동시에 존재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간장옹기가 옆에 있는 커다란 장독과 매우 곱게 채색된 사기그릇을 보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왜 자기는 그토록 못나고 투박하며 작게 만들어졌는지를 푸념하며 살았다. 어느 날 옹기는 궁궐로 팔려가 임금님의 수라상에 간장 그릇으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자리잡고 사랑받으면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그 옹기는 자기가 어떤 용도로 쓰이기 위해 만들어졌는지 몰랐을 뿐이다. 처음부터 간장을 담아 밥상 위에 올려놓을 그릇으로 사용할 목적에서 도공이 빚었기 때문에 옹기의 의사나 불만과 상관없이 세상에 나왔고 그것으로 충분한 존재의 가치는 있었다. 간장옹기가 작은 것을 거부한다면 그 옹기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커다란 간장옹기는 애초부터 밥상에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치가 이와 같다면, 사람의 역할은 얼마나 깊은 뜻이 담겨 있겠는가?

의태현상(擬態現象)이란 어떤 생물이 살아남기 위하여 모양과 색깔 또는 행동을 닮아가는 현상을 말한다. 나비는 새라는 포식자를 속이려고 두 가지 형태로 닮아가면서 살아남는다. 하나는 독이 있어 먹으면 구토가 일어나기 때문에 새들이 기피하는 독나방이나 왕나비같이 화려하고 무늬가 무섭게 생긴 색채로 닮아가면서 생존하고, 다른 하나는 포식자가 맛이 없어 싫어하는 나비의 무늬와 색채를 닮아감으로써 잡아먹힐 확률을 낮추는 행태로 살아간다. 사람도 자기역할을 완성하기 위하여 조직이나 사회생활 속에서 누군가를 닮고자 한다. 호손의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에서 소년 어니스트가 성장하면서 닮아가고자 했던 것처럼 가장 바람직한 의태는 따라가고자 하는 사람의 내면적 품성과 외향적 행동까지 모두 닮는 것이 좋다.

요즈음 국민들이 나라와 사회를 보는 시각이 매우 냉소적이다. 갈수록 삭막해지고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으며 사는 것이 재미가 없다고 한다. 자기 역할을 다해도 보상이 돌아오지 않으며 능력이 없거나 모자라는 자들에게 역할까지 빼앗겨 버림으로써 살아야 할 목표를 잃어버린 상황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다툼과 오판이 사회 전반에 걸쳐 극심한 대립의 혼란과 보이지 않는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고 있다. 사람이 사는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는 말이다. 이익이 된다면 썩어서 냄새나는 부정적 힘이라도 서슴없이 닮아가려고 줄을 대고 쫓아 다니는 오늘날의 비틀어진 인간관계가 보여주는 우울한 결과들이다. 한시라도 빨리 각자에게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역할을 찾아주자. 상대방을 아끼고 존경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의 관계를 복원시켜야 한다. 만백성의 뜻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닮아가야 한다. 그래야 다 같이 희망이 보이는 삶을 찾아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2011-10-0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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