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나 집안의 경사 중에 자녀의 ‘입신양명’만 한 것은 없을 터. 과거 합격은 ‘개천에서 용 되기’ 위한 그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과거시험 합격은 예나 지금이나 모든 이에게 큰 기쁨을 안겨 주기에 충분하다.
오늘날은 ‘공시’(公試·공무원시험)를 통과해야만 공직자로 근무할 수 있다. 그러니 공시를 과거시험과 비교해도 될 듯하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자들에게만 응시 자격이 주어진 변호사 자격 시험도 과거시험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공시가 이에 더 가깝다. 9급이든 7급이든, 아니면 행정고시로 불렸던 5급 시험이든 직급과 관계없이 모두 과거시험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요즘의 공시는 과거시험 못지않게 매우 어렵다. 100대1 이상의 경쟁은 다반사라고 한다. 대학생들이 몇 년을 열심히 공부하며 시험 준비를 잘해야 겨우 합격할 수 있을 정도다.
과거시험과 공시의 최고 매력은 공정성 아닐까. 결격 사유가 없는 한 남녀노소 누구나 응시할 수 있고, 점수를 많이 받으면 합격한다. 실력이 평가의 기준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요즘 공시엔 부모의 경제적인 능력이 추가됐다는 데 있다.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공시 준비생들은 이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어제 언론을 통해 알려진 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공무원시험 합격률과 가구소득이 전반적으로 비례했다. 다시 말해 부모의 경제력이 높을수록 자녀의 공시 합격률이 높았다는 연구 결과다. 게다가 9급, 7급, 5급 등 응시 급수와 합격률은 소득 격차에 따라 확연히 구분됐다. 5급의 경우 소득차에 따라 응시율마저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두 해 전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대학생 4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청년의 성공 요인 1순위로 중국·일본은 재능을, 미국은 노력을 꼽은 반면 한국 학생들은 부모의 재력(50.5%)을 꼽았다는 사실이 실감 난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경사스런 소식을 듣기는 더욱 어려워진 세상이다.
2019-10-1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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