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설중송탄(雪中送炭)/정기홍 논설위원

[씨줄날줄] 설중송탄(雪中送炭)/정기홍 논설위원

입력 2014-04-30 00:00
수정 2014-04-30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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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천하를 놓고 싸운 초한전(楚漢戰)에서 초나라의 항우를 물리친 유방은 “장량처럼 교묘한 책략을 쓸 줄도, 소하같이 행정을 살피고 군량을 제때 보급할 줄도 모른다. 한신처럼 싸움을 이기는 일도 잘 못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가 세 영웅의 도움으로 ‘역발산 기개세’의 항우를 이겼다 해서 오늘날에도 익히 회자되고 있다. 소하가 양식과 군량을 보급한 것은 전장의 후방에서 돕는 일로, 공적으로 치면 다소 뒤처지는 일이다.

침몰한 세월호의 구조·수습현장에서 공무원들의 손발이 안 맞아 곳곳에서 불협화음을 낳고 있다. 현장에는 전문가가 없고 아마추어와 같은 ‘얼치기’만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주에는 화훼협회에서 분향용으로 국화 2만 송이를 무상 기부하려고 했지만 기관 간의 어깃장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정부의 장례지원단에 파견된 직원의 개인 전화번호를 거절한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메모까지 남겼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단다. 그 시간, 경기 안산의 합동분향소에는 국화가 동나 검은 리본으로 대체되는 촌극을 빚었다. 구조에서 수습까지 끝없이 우왕좌왕하는 꼴에 헛웃음마저도 아까울 정도다.

전국은 ‘천붕지통’(天崩之痛)과 같은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른 채 슬픔에 잠겼다. 어디서부터 잘못됐고, 잘못의 끝이 어딘지 분간도 못한다. 모든 게 공무원 탓이라고 한다. 이러한대도 연수 외유를 떠난 무개념 공무원이 잇따르고 현장 수습은 부처 간, 기관 간 ‘따로국밥’처럼 돌아간다. 하지만 희망의 끈마저 놓아선 안 된다. 다행히 추모행렬은 줄을 잇고 성금과 구호품도 답지하고 있다. 만사를 제쳐놓고 현장을 찾는 자원봉사자도 힘이다. 남은 자의 양심이고 의무인 듯 모두가 동병상련, 십시일반이다.

‘설중송탄’(雪中送炭)이란 고사가 있다. 중국 북송의 태종 조광의가 귀족들이 토지 합병을 둘러싸고 탐욕을 부리면서 백성의 삶이 궁핍해지자 백성에게 돈과 쌀, 땔감을 보냈다는 데서 유래했다. 잇따른 농민의 난으로 불안했던 태종의 민심수습책으로 치부할 순 있지만 어려운 이를 도울 때 자주 인용된다. 최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EU에서 서로 돕자는 의미로 언급해 다시 알려졌다.

공직사회는 말 그대로 자중지란을 겪고 있다. 연발하는 헛발질에 공직을 보는 노여움이 머리털이 갓을 찌르고 나올 정도라 해석해도 모자람이 없다. 만연한 보신주의의 결말을 보는 듯하다. 시중에는 ‘공직자 페이퍼 신드롬’까지 만들어졌다. 우리 공직에 소하와 같은 ‘장수’는 정녕 없는가. 그래도 국민의 마음에는 설중송탄의 뜻이 이어져야 하겠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2014-04-3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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