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화창했던 지난 주말. 문화답사 모임을 따라나섰다가 태릉 육군사관학교 내 육군박물관을 방문하게 됐다. 시간도 충분치 않고, 개인적으로 군사나 무기에 별 흥미가 없는지라 대충 훑어보고 제1전시실을 나오려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전시물 앞에서 나는 화들짝 놀라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누렇게 빛이 바랜 비단에 붓으로 휘갈려 쓴 ‘풍상세월(風霜歲月)’. 만해 한용운의 글씨였다. 언제 쓴 것인지, 어떤 연유로 육군 박물관에 전시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글씨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숨을 멈추게 할 정도로 강했다. 세월이 흘러도 사그라지지 않는 조국 독립을 향한 굳은 의지와 기개가 힘주어 쓴 네 글자에 그대로 묻어났다. 강한 바람과 찬 서리에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 왼쪽으로 이지러진 월(月)자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고난의 세월, 국가의 존망을 걱정하며 고뇌하던 지식인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참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나. 그 값이나 제대로 하고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누렇게 빛이 바랜 비단에 붓으로 휘갈려 쓴 ‘풍상세월(風霜歲月)’. 만해 한용운의 글씨였다. 언제 쓴 것인지, 어떤 연유로 육군 박물관에 전시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글씨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숨을 멈추게 할 정도로 강했다. 세월이 흘러도 사그라지지 않는 조국 독립을 향한 굳은 의지와 기개가 힘주어 쓴 네 글자에 그대로 묻어났다. 강한 바람과 찬 서리에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 왼쪽으로 이지러진 월(月)자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고난의 세월, 국가의 존망을 걱정하며 고뇌하던 지식인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참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나. 그 값이나 제대로 하고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2010-04-28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