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김태호식 정치/이재연 정치부 기자

[오늘의 눈] 김태호식 정치/이재연 정치부 기자

입력 2014-10-27 00:00
수정 2014-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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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연 정치부 기자
이재연 정치부 기자
지난주 정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의 사퇴 과정은 ‘김태호식 정치’의 명암을 새삼 드러낸다.

“형님만 800명”이라는 우스개가 회자할 만큼 김 최고위원의 친화력은 가히 독보적 수준이다. 정치권에서 손꼽히는 마당발 인맥을 자랑한다. 술자리를 한 번만 가져도 절대 그 인연을 놓치지 않는다. 휴대전화를 받을 때도 “아이구, 형님”하며 받는 식이다.

지난 7·14 전당대회 때 경남 출신인 그는 지연이 겹치지 않는 충청·강원 지역 초·재선 의원들로부터도 든든한 지원을 받아 3위에 올랐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측면도 있었겠지만 의원들이 “그의 인간적 매력에 포섭됐다”고 고백할 정도면 친화력이 보통은 아닌 게 분명하다.

반면 즉흥적인 좌충우돌 스타일은 그의 아킬레스건이다. 대표적 예가 ‘홍어 거시기’ 발언이다. 2012년 대선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 당시 야권후보 단일화를 비판하면서 “국민을 마치 ‘홍어 X’ 정도로 생각하는 대국민 사기쇼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극언해 물의를 빚었다. 앞서 대선 예비후보 경선 때는 “오빠는 강남 스타일, 근혜는 불통스타일”이라는 노래를 하고 다녔다. 그런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한나라당 대표 시절엔 “누님, 태호 왔습니다”라고 인사하며 넉살 좋게 굴었다고 한다.

그의 이번 과정은 ‘김태호식 정치’의 아쉬운 구석을 노출했다.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애매한 때에 나온 고도의 승부수라는 관측보다는 ‘뜬금없다’는 평가가 갈수록 커졌다. 먼저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최소한의 논의과정이 생략됐다.

물론 정치인이 자신의 행보를 타인과 상의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개헌론 파장이 정부 여당을 한바탕 훑고 지나간 뒤 공무원연금 개혁, 세월호·정부조직법 협상, 내년 예산안 등 국정 현안이 산적한 마당이다.

지난 23일 김 최고위원의 사퇴 발언이 나오기 전 김 대표 측에선 최고위원들에게 “공무원연금 개혁이 시급하니 다른 발언은 자제해달라”고 요청했었다. 하지만 김 최고위원의 사퇴 발언은 강행됐다.

본인은 “장기간 고민한 결과”라고 했지만 개헌론자인 그가 박근혜 정부의 경제활성화법 처리 미진을 사퇴의 변으로 잡은 것도 생뚱맞다. 사퇴 시점과 명분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 셈이다.

최고위원직 사퇴가 청와대나 친박근혜계와의 교감설로 비친 부분은 ‘무계파’를 외쳐 왔던 그에겐 타격으로 남을 공산이 있다. 전당대회 3위로 지도부에 입성한 것이 김 대표와의 ‘연대’에 힘입은 바 컸던 점을 감안하면 좀 더 아쉽다.

김 대표의 삼고초려 요청으로 사퇴 재고에 들어간 김 최고위원은 지도부 복귀 여부를 떠나 ‘김태호식 정치’의 진화 기점을 맞을 것 같다. 2010년 총리 낙마 이후 선 굵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그가 중앙 정치인으로 거듭날지 눈여겨볼 대목이다. 인간적인 매력으로 무장한 정치인이 숙성과 통찰까지 겸비한다면 금상첨화 아닐까.

oscal@seoul.co.kr
2014-10-2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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