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문화의 언어
김기중 사회정책부 차장
문화계는 신조어가 많이 들어오는 분야다. 문화 향유 경향이 다양화하면서 관련 외래어도 물밀듯 들어온다. 이 가운데 우리말로 충분히 고쳐 쓸 수 있는 단어들이 많다. ‘그래픽 노블’은 최근 들어 문학의 한 갈래처럼 자리잡았는데, 영단어 그래픽(graphic)과 소설을 가리키는 노블(novel)을 합성한 말이다. 글이 많고 작가 특유의 그림체가 두드러지는 예술적 성향의 만화를 가리킨다. 최근엔 일반 만화도 높여서 그래픽 노블이라 부른다. 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을 가리키는 말로, ‘만화형 소설’로 바꿔 쓰면 된다.
‘아트버스터’ 역시 최근 들어 자주 등장한다. 예술을 뜻하는 아트(art)와 ‘터지다’, ‘파열하다’를 뜻하는 버스터(buster)를 합쳤다. 버스터는 영화에서 흥행작을 뜻하는 ‘블록버스터’에서 가져온 말이다. 합성어가 또다시 합성어로 파생한 꼴이다. 국어문화원연합회는 ‘흥행 예술작’을 권한다. 이 밖에 ‘아트페어’도 많이 쓰는데 ‘미술 전람회’로 바꿀 수 있다.
동영상이 인기를 끌면서 ‘롱폼’ 혹은 ‘쇼트폼’이라는 단어도 눈에 띈다. 영상의 상영 시간을 기준 삼아 나눈 단어들이다. ‘롱폼 영상’이라든가, ‘쇼트폼 영상’ 등 정체불명 합성어도 생겨나고 있다. 긴 영상, 짧은 영상으로 고치면 뜻이 분명해진다. ‘스핀 오프’(spin off)는 원래 영화나 드라마를 바탕으로 새로이 파생해 나온 작품을 가리킨다. 기존 작품이 구축한 세계관을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펼치는 터라 익숙하게 다가간다. ‘파생작’으로 바꾸면 뜻이 분명해지고 이해하기도 쉽다. 이 단어는 증권 관련 용어로도 쓰는데, 이럴 땐 ‘회사 분할’이라는 의미다.
뜻을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도 많아졌다. 예컨대 ‘대전마케팅공사, 한빛탑에 대형 태극기 미디어 파사드로 조명’이라는 기사 제목에 쓴 ‘미디어 파사드’는 처음 들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미디어(media)와 건물 외벽을 뜻하는 파사드(facade)의 합성어로, 외벽 등에 다양한 영상을 투사하는 작업 방식을 말한다. ‘외벽 영상’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라키비움’ 역시 어려운 단어다. 도서관(library), 기록관(archives), 박물관(museum)의 영문을 따서 조합했다. 세 가지 기능을 복합해 이용자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을 가리킨다. ‘복합 문화 공간’ 정도로 바꿔 쓰는 게 좋다.
2021-08-1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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