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진 칼럼] 김영란법과 언론, 언론인

[손성진 칼럼] 김영란법과 언론, 언론인

손성진 기자
입력 2015-03-25 18:02
수정 2015-03-26 02:57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이미지 확대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김영란법이 통과되자 큰일 날 듯이 호들갑을 떠는 언론들을 보고 국민들이 떠올린 말은 아마도 ‘도둑이 제 발 저린다’였을 것이다. 위헌적인 법률이라고 언론이 아무리 외쳐 봐도 국민은 찬성하고 공감할 의향이 없어 보인다. 부패 집단이라는 측면에서 국민의 시각으로는 언론인은 공직자들과 다를 바 없이 한 묶음으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공정·투명의 시대 21세기에 도둑 취급을 받는 것이 언론으로서는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과거의 업보이니 어쩌랴. 그렇다고 해서 자신 있게 큰소리칠 수 있는 언론 또는 언론인도 없을 것 같다. 필자도 그런 자신이 없고 같은 언론인을 욕할 자격도 없다. 고백하건대, 상당수의 언론인들과 함께 필자 또한 김영란법이 현재 유효하다면 저촉될 행위를 조금씩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촉될 행위를 자백하자면 ‘취재 관계자’들의 돈으로 식사를 하고 좀 더 많은 비용이 드는 골프 접대를 받는 것이다. 금액이 적지 않은 1980년대식 ‘촌지’도 아닌데 그게 무슨 대수냐고 반문할, 안이한 인식도 있을지 모르지만 국민의 시선은 몹시 싸늘하다. 한국 언론은 아직도 권력, 정부, 기업과 사바사바해서 기사를 적당히 주무르는 후진국형이라는 인상이 국민들 사이에 짙게 깔려 있다. 일반 국민의 이런 생각을 오해라고 하면 오해라고 할 수도 있다. 수많은 사례,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공직의 부패는 지난 수십년간 세상의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러나 언론 경력 28년차인 필자의 지난날을 돌이켜봐도 비리와 관련한 언론의 환경은 상당히 달라진 게 사실이다. 형사처벌의 기준인 100만원은 언론인으로서는 괘념할 필요조차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두려울까. 쌍수를 들고 반대하는 여러 언론의 속내를 명확히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김영란법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위헌성 또한 의견이 일치되는 견해는 아니다. 경실련의 조사에서 조사에 응한 공법학자 60명 중 88%가 “위헌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언론에 재갈을 물려서 길들이는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 못하는 바 아니다. 하지만 언론을 조종하는 수단이 채찍보다는 사탕이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한다. 채찍에 대해선 저항으로 맞섰고 사탕에는 굴종으로 허리를 굽힌 언론의 과거사가 또렷이 남아 있다. 김영란법이 채찍이라면 언론은 부당한 압력에 저항하는 힘을 더욱 키워서 보여 주면 그만이다. 김영란법은 언론의 독립, 언론의 자유를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의식 있는 언론단체의 김영란법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는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언론계가 많이 정화되었다고는 하지만 1급수처럼 청정지역이 된 것은 아니다. 80년대식 ‘권언유착’(權言癒着)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정치집단과 권력기관,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는 풍토가 사라졌다고 말할 수 없다. 역기능에 대한 걱정도 없지 않지만 국민의 기대는 언론의 그릇된 풍토를 바로잡는 김영란법의 순기능이다. 김영란법의 위헌 여부는 결국 헌법재판소라는 상급 국가기관이 판단을 내려줄 것이다. 공직과 마찬가지로 언론도 깨끗해야 하고 깨끗하다면 위헌이냐 합헌이냐 하는 논쟁은 논쟁으로서 가치가 없다. 위헌 판단은 그 법을 어겼을 때에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간통죄를 아무도 저지르지 않는다면 간통죄가 위헌이든 합헌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란법 위헌 주장에는 김영란법을 지키지 못하겠다는 고집이 느껴져서 한편으로 해괴하고 한편으론 부끄럽다.

지금 언론에 필요한 것은 과거, 또 현재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다. ‘2015 에델만 신뢰도 지표조사’에 따르면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47%에 그친다. 독재권력과의 야합이라는 과거의 잘못을 씻어냈다면 어쩌면 지금도 그보다 덜하지 않은 문제점을 언론은 갖고 있다. 권언유착, 정언(政言)유착과 더불어 소통과 통합을 가로막는 편파성에 매몰된 보도 태도가 그 하나다. 개혁을 외치면서 정작 자신은 개혁을 거부하는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sonsj@seoul.co.kr
2015-03-26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