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정권의 운명 쥐락펴락하는 日신문/이종락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정권의 운명 쥐락펴락하는 日신문/이종락 도쿄 특파원

입력 2010-08-21 00:00
수정 2010-08-2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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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본 신문기자, 대학교수와 함께 스모 선수들이 먹는다는 창고나베 식당에 갔다. 최근의 한·일관계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가 양국 신문기자가 있어서인지 화제가 자연스럽게 두 나라의 신문으로 넘어갔다. 참석자 중 한 명이 다소 황당하면서도 재미있는 질문을 불쑥 꺼냈다. 한국과 일본 언론 중 누가 더 영향력이 있느냐는 우문(愚問)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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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락 특파원
이종락 특파원
일본 교수와 기자는 한국 언론이 더 세다고 주장했다. 정부 부처 장관실을 불쑥불쑥 드나들 수 있는 한국기자가 더 파워풀해 보인다고 했다. 6개월째 일본 언론을 접해 본 기자는 손사래를 쳤다. 일본 언론, 특히 일본 신문이 훨씬 영향력이 있고 사회의 어젠다를 이끌고 있다고 응수했다. 입씨름이 계속됐지만 결국 기자의 주장에 두 사람이 승복하는 걸로 술자리를 파했다.

일본 신문은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 2008년 기준 30개 회원국의 유료 일간지 발행부수 조사 결과 일본이 5100만부로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1300만부로 미국(4900만부), 독일(2000만부), 영국(1500만부)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일본인구가 2008년 기준 1억 2728만명인데 이 당시 신문 구독률은 90.25%(일본 신문협회조사)에 이른다. 글을 읽을 수 없는 어린이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성인이 종합일간지, 지방지, 스포츠지 등을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일본 신문은 힘이 세다. 인터넷의 발달로 신문 구독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지만 일본 신문의 영향력은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사히, 요미우리, 마이니치, 도쿄, 니혼게이자이, 산케이신문 등 6개 신문사가 일본의 여론을 이끈다. 서울신문과 제휴 중인 도쿄신문은 나고야에 본사를 둔 주니치신문사의 도쿄 지역지(블록지)이지만 6개 신문 중 가장 진보적인 논조를 보이는 중앙지 대우를 받는다. 이들 신문은 방송사도 소유하고 있다. 아사히는 아사히TV, 요미우리는 니혼TV, 산케이는 후지TV, 니혼게이자이는 TV도쿄의 대주주이고 마이니치는 TBS의 지분을 소유 중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과 달리 신문이 해당 계열사 TV의 논조를 좌지우지하는 형국이다.

한국의 경우 대통령선거 기간 언론의 보도가 어느 정도 선거의 향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결정적인 승패를 가르진 못한다. 일단 대통령이 선출되면 잘하든 못하든 5년 임기가 보장된다. 언론이 대통령을 중도에 낙마시킨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일본 신문은 정권의 운명도 쥐락펴락한다. 내각책임제인 일본 정치는 여당의 대표가 총리를 맡는다. 임기제가 아니어서 여론의 향배에 따라 물러나야 한다. 여론 형성은 당연히 신문이 주도한다. 신문들은 진보(아사히, 마이니치, 도쿄)와 보수(요미우리, 니혼게이자이, 산케이) 등 이념적 성향에 따라 정부의 정책과 총리를 평가하고 비판한다.

특히 신문사들은 매월 여론조사를 통해 내각 지지도를 발표한다. 보통 한 번 조사하는 데에 200만엔(약 2700만원)을 들여 1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다. 하토야마 총리 재임 때에도 그랬듯 내각 지지도가 10%대로 떨어지면 총리가 옷을 벗을 준비를 해야 한다. 일본에서 여론조사는 ‘참고사항’이라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난다. 정치와 정당의 머리 위에 앉아 있다. 언론사들이 편향적, 자극적 설문으로 여론조사의 부작용을 조장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신문사의 입맛에 맞춘 ‘권력 개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인들은 언론, 특히 신문기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일본 기자들은 종종 공정성이 도마에 오른다. 객관적인 위치에서 정권을 비판해야 할 신문기자들이 기득권 세력이 돼 정부와 유착관계를 맺고 있다는 신랄한 지적도 듣는다. 언론인이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얘기가 신화로 들릴 정도다. 일본 신문체제를 도입한 한국 언론이 되짚어봐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jrlee@seoul.co.kr
2010-08-2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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