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아마겟돈(Armageddon)/주병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아마겟돈(Armageddon)/주병철 논설위원

입력 2011-07-21 00:00
수정 2011-07-21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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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달러가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축통화로 등극한 것은 달러 가치의 위력 때문이었다. 미국은 2차대전을 치르기 위해 돈이 필요한 영국에 44억 달러를 빌려줬고, 프랑스에도 10억 달러가량 꿔줬다. 미국이 졸지에 ‘새로운 갑부’로 등장한 것이다. 당시 금본위제 하에서 국제통화였던 금과 파운드가 달러에 밀려 상석(上席)을 내준 계기가 됐다.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경제 패권을 넘겨받은 미국은 마음대로 달러를 찍어 영향력을 확대했다. 달러 패권의 서막이었다.

비슷한 사례는 오래전 중국에서도 있었다. 한때 동맹관계였다가 숙부·조카 사이로 바뀐 금나라와 남송의 관계가 그랬다. 일찌감치 세계 최초로 지불 도구를 발명한 남송은 전국 단위의 유통 지폐를 발행했지만 무리하게 찍지는 않았다. 반면 금나라는 전쟁비용 등을 충당하느라 마구잡이로 지폐를 발행했다. 지폐의 달콤한 맛에 중독됐고, 곧 화폐가치가 폭락했다. 사람들은 자산을 남송으로 빼돌리고 조국을 버렸다. 금나라는 역사상 지폐 남발로 망한 첫 나라가 됐다. 이후 원나라도 똑같이 망했다.

지금 미국이 그 꼴이다. 달러를 남발한 바람에 국가 부도위기에 몰렸다.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10.5%로 2차대전 이래 최고 수준이고, 국가채무는 GDP 대비 92.8%다. 그래서 오바마 행정부가 부채 한도(14조 3000억 달러)를 증액하려는데 의회가 브레이크를 건다. 재정적자 감축방안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미국은 2000년 이후 성장률이 종전에 비해 절반으로 둔화됐음에도 불구하고 감세정책, 국방비 증강 등으로 빚더미에 올랐다. 미국이 채권국에서 채무국으로 바뀌면서 달러 최대 보유국인 중국이 미국의 위상을 위협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등 신용평가사들의 국가신용등급 하향 경고도 예사롭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이 오죽했으면 최근 주례방송에서 부채한도 증액의 어려움을 빗대 “최소한 아마겟돈(Armageddon)만은 피합시다.”라고 했겠는가. 아마겟돈은 지구의 종말을 초래할 듯한 대혼란을 의미하는 말로 신약성서 ‘요한의 묵시록’에 나오는 말이다. 부채 더미에 올라앉은 미국이 종말론의 용어를 들먹일 정도가 됐다. 달러 패권의 격세지감이다.

우리가 미국의 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는 없다.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의 복지포퓰리즘 공약이 도를 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미국의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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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2011-07-2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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