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특약? 안 됩니다” 신규 가입 중단한 얌체 보험사들

“지진특약? 안 됩니다” 신규 가입 중단한 얌체 보험사들

유영규 기자
유영규 기자
입력 2016-09-21 22:50
수정 2016-09-22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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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쇄도하자 약속한 듯 ‘발뺌’

업계 “손해율 산정 어렵다” 해명… 금감원 “판매 중단 문제 못 삼아”

경북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한 직후 대부분의 보험사가 ‘지진담보특약’ 신규 판매를 전면 중단한 것으로 드러났다. 겉으로는 ‘여진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가능성이 낮다고 봤던 지진이 잇따라 터지자 슬그머니 발을 빼려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대규모 지진은 한두 개 보험사로 피해를 담보할 수 없는 만큼 피해 보상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2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동부화재, KB손해보험, 한화손해보험 등 손해보험사는 ‘경주 5·8 지진’ 발생 다음날인 지난 13일부터 내부 지침 등을 통해 지진담보특약 신규 가입을 전면 금지하도록 지시했다. 이날 현재 화재보험을 판매 중인 12개 손보사 중 일반인의 지진특약 가입이 가능한 곳은 현대해상과 삼성화재 2곳뿐이다. 그나마 삼성화재는 1년 후 보장이 사라지는 소멸성 보험에 한해 조건부 가입을 받아 주고 있다. 현대해상도 이날 “조만간 가입 요건을 강화할 것”이라는 방침을 내려보냈다.

기자의 가입 문의 전화에 KB손보 영업점 측은 “지진 발생 후 여진까지 이어지면서 지진특약 가입을 원한다는 문의전화가 하루에도 수십통씩 오고 있지만 가입할 수 없다는 답변만 드리고 있다”며 “(본사) 지침에 따른 것이라 언제 풀릴지 기약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동부화재 측도 “특약 가입은 불가능하다. 천재지변(여진)이 진행 중이라 (보험사가) 가입을 거부해도 면책사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안다”며 버텼다.

지진보험에 가입하겠다고 하는데도 보험사들이 손사래를 치는 것은 손해율 때문이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가입자 자체를 찾기 힘들던 지진특약에 갑자기 가입 문의전화가 하루 수백통씩 쇄도하고 있다”면서 “여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지진보험을 다 받아 주면 뒷감당이 안 된다”고 털어놓았다. “암병동에서 암보험을 파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국내엔 지진 피해를 보장하는 전용 상품 자체가 없어 피해 보상은 풍수해보험과 화재보험 특약에 의지해야 한다. 해당 보험 가입률은 각각 0.1% 수준인데, 이마저도 막혀 버린 셈이다.

감독 당국은 법적으로 문제 삼긴 어렵다는 견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지진 리스크에 대비할 상품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은 맞지만 지진보험이 의무보험도 아닌 상황에서 민간 보험사가 특정 상품 판매를 중단하는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며 “다만 중단 과정에 불공정한 부분이 없는지는 들여다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한국 실정에 맞는 지진보험 시스템을 구축할 때라고 지적한다. 최창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진은 워낙 거대한 리스크인 탓에 해외 어느 보험사도 지진보험을 단독으로 직접 인수하지 않는다”면서 “지금이라도 우리나라의 지진 리스크를 조사해 수치화하고 지진 재보험이나 기금 운영 등 우리 실정에 맞는 대비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2016-09-22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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