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가혹하게… 제품들의 ‘극한 도전’

함부로 가혹하게… 제품들의 ‘극한 도전’

홍희경 기자
홍희경 기자
입력 2016-08-19 23:06
수정 2016-08-20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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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해하고 부숴 보는 ‘가혹 테스트’

‘함부로 가혹하게.’

30도를 훌쩍 넘는 폭염에 기진맥진한 사람들과 다르게 기계들은 잘 버텨 주고 있다. 길에 퍼지는 자동차도, 더위 먹고 과부하가 걸려 고장나는 선풍기나 에어컨도 없다. 퍼진 자동차를 상상하는 자체가 ‘옛날 사람’임을 인증한다.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에게 폭염 때문에 ‘메이드 인 코리아’가 고장날 수 있단 생각은 낯설다. 이유는 ‘한국 제품 좋다’는 6글자로 쉽게 압축되지만, 이면을 보면 그 바탕에 깐깐한 품질·제품 안전성 시험 과정이 숨어 있다. 다 만든 제품에 불을 지르는가 하면, 제품을 모듈별로 분해해 혹한·폭염·소금물에 방치하는 과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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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인천 송도 도심 서킷에서 현대차 쏘나타끼리 차대차 충돌 시험이 펼쳐졌다. 내수용차와 수출용차의 품질에 차이가 없다는 점을 알리기 위한 충돌 시험의 결과 시속 56㎞로 달리다 정면충돌한 두 대의 운전석 모두 보호됐고, 에어백이 작동됐다. 서울신문 DB
지난해 8월 인천 송도 도심 서킷에서 현대차 쏘나타끼리 차대차 충돌 시험이 펼쳐졌다. 내수용차와 수출용차의 품질에 차이가 없다는 점을 알리기 위한 충돌 시험의 결과 시속 56㎞로 달리다 정면충돌한 두 대의 운전석 모두 보호됐고, 에어백이 작동됐다.
서울신문 DB
●고문하듯… 칼로 긁고 침수시키는 스마트폰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애지중지하지만, 유독 스마트폰에 냉담한 이들도 있다. 제리릭은 ‘제리릭에브리싱’이란 계정으로 유튜브에 신형 휴대전화 테스트 영상을 올린다. 애플의 아이폰,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 LG전자의 최근 모델인 G5 등이 모두 제물이 됐다. 제리릭은 스마트폰 화면과 카메라 렌즈를 면도칼로 긁어 보고, 화면에 라이터를 대 보고, 있는 힘껏 구부러뜨린다. 이런 영상들이 아이폰의 휨 현상(밴드게이트) 논란을 부른 적도 있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제리릭보다 더 높은 강도의 시험을 통과한 제품을 출고한다. LG전자는 “낙하 시험, 고온·저온 시험, 습기 시험, 터치스크린 시험, 키 프레스 시험 등 다양한 조건에서 각종 내구성 관련 시험을 한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몇 년 전 갤럭시 시리즈에 가하는 신뢰성 시험 4종류를 뉴스룸에서 전격 공개했다. 1㎏ 하중의 압력으로 0.5초에 한 번씩 홈키를 20만번 눌러 보고, 100㎏ 몸무게의 사람이 깔고 앉았을 때를 가정해 100회 깔아 보고, 좌우로 25차례 이상 비틀어 보고, 작은 세탁기통 같은 곳에 날카로운 실리콘과 스마트폰을 함께 넣고 돌려 흠집이 나는지 파악하는 ‘극한 4종’의 영상은 금세 입소문을 탔다.

여기에 더해 소비자가 시간당 60㎖ 빗속에서 최소 1회 이상 통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침수 기준에 따른 시험, 10여분간 비를 맞힌 스마트폰을 정상 작동시키는 시험, 12ℓ의 물을 35초간 스마트폰에 쏟아붓고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시험이 진행됐다. 올해 출시된 갤럭시S7과 19일 시판된 갤럭시노트7은 방수폰으로 이보다 더 가혹한 침수 시험을 거쳤다. 갤럭시노트7에 대해 삼성전자는 물속에서 사용하는 체험 행사를 진행, 소비자들에게 갤럭시노트7을 함부로 다룰 기회를 줬다.

스마트폰을 대하는 소비자 태도가 가혹해질수록 부품사는 긴장한다. 스마트폰 카메라 모듈 공급업체인 LG이노텍과 삼성전기의 안전 테스트가 경쟁하듯 진화하는 이유다.

LG이노텍은 누군가가 손을 부들부들 떨며 스마트폰 셀카를 찍는 상황, 하필 카메라 렌즈 쪽이 바닥에 닿게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때, 정전기로 무장한 먼지가 렌즈에 찰싹 달라붙었을 때 등을 ‘머피’처럼 생각하고 시험을 설계한다. LG이노텍 측은 “업계 최초로 손떨림 테스트 장비를 자체 개발해 수십대 검사 장비 안에 카메라 모듈을 넣어 스마트폰을 6개 방향에서 수백번씩 흔들며 촬영하는 가혹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여러 기후를 가정해 이런 시험을 반복하고, 낙하·분진 내구성도 다양하게 시험한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반도체 생산라인에 버금가는 ‘10존 클린룸’을 운영하는데, 10존이란 2800㎤의 공간에 0.0005㎜ 크기의 먼지가 10개 이하인 상태를 뜻한다.

●극한 환경… 80도 고온·영하 40도 살아남고

삼성전기의 카메라 모듈 역시 극한 환경을 모두 경험하고도 제 모습과 기능을 유지했을 때 스마트폰·태블릿·자동차 등에 탑재된다. 탑재되는 기기뿐 아니라 브랜드별로 천차만별인 시험 조건을 모두 충족했을 때 제품이 되는 것이다. 삼성전기에서도 가혹한 상상은 필수다. 요즘 같은 날씨에 밀폐된 차에 휴대전화를 방치했을 경우를 생각해 80도 고온에서 4일(96시간) 보관해 보고, 사우나를 생각해 60도·습도 90% 환경에 4일간 카메라 모듈을 두기도 한다. 역으로 극지방 날씨인 영하 40도에 4일 보관해 본다. 영하 40도에 30분간 모듈을 둔 뒤 즉시 80도로 온도를 높여 30분간 보관하는, 지구 멸망의 날이나 우주로 로켓을 발사하는 환경처럼 이례적인 상황을 감안한 듯한 시험도 이 회사는 감행한다. 낙하 시험은 8㎝ 높이에서 전·후면 합쳐 5000회 실시되고, 1.5m 높이에서 12차례 떨어뜨리는 시험도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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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성시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 내 전파무향실에서 연구원들이 전장 부품의 전파 민감도를 측정 중이다. 현대·기아차 제공
경기 화성시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 내 전파무향실에서 연구원들이 전장 부품의 전파 민감도를 측정 중이다.
현대·기아차 제공
●시련의 질주… 신형車 세계 각지서 극한 주행

가전제품들이 실내에서 ‘고문’을 당한다면, 자동차는 아주 척박한 곳에서 ‘시련’에 처한다. 현대·기아차는 세계 각지의 다양한 주행시험장에서 차량 테스트를 진행한다. 특히 독일 프랑크푸르트 서쪽으로 약 170㎞ 떨어진 ‘뉘르부르크링 서킷’은 20.8㎞의 코스에 총 73개의 코너와 급경사가 반복되는 가혹한 도로로 현대·기아차뿐 아니라 벤츠, BMW, 포르셰 등의 테스트센터가 모여 있다. 지난해 출시된 현대차의 ‘제네시스 EQ900’은 이 서킷을 하루 30바퀴씩 달리며 주행 성능을 시험했다.

미국에 있는 현대·기아차의 ‘모하비주행시험장’도 험난한 환경으로 명성이 높다. 사막 한가운데 여의도 면적의 6배인 1770만㎡ 규모로 2005년 완공된 이 시험장에서 2013년 출시된 2세대 제네시스가 단련됐다. 여름 기온이 39~54도에 이르고, 폭풍이 오면 비와 눈이 몰아치는 환경이 특징이다.

현대·기아차는 요즘 ‘감성 품질’ 향상에 매진 중이다. 고객의 편안함을 극대화시키는 게 ‘감성 품질’의 핵심이지만, 정작 차량엔 한결 엄격한 시험이 실시되고 있다. 지난 3월 경기 화성시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에 설립된 시트개발연구소인 ‘시트 컴포트랩’에서는 전선·센서가 달린 옷을 입은 연구원들이 개발 단계 시트에 앉아 주행 시 진동·충격을 확인하는 시험을 한다. 남양연구소의 ‘소음진동개발센터’에서는 이른바 ‘소리 디자인’이 한창인데 시동 거는 소리, 문 여닫는 소리, 방향지시등 소리까지 아름답게 만드는 시험이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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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구미사업장에서 한 연구원이 무작위로 골라낸 올레드TV의 포장을 뜯고 72시간 동안의 품질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LG전자 제공
LG전자 구미사업장에서 한 연구원이 무작위로 골라낸 올레드TV의 포장을 뜯고 72시간 동안의 품질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LG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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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I의 전기차용 배터리가 1t 이상 하중을 견디는 시험을 받고 있다. 이 회사 직원이 찡그린 표정의 이모티콘을 리터칭, 시험의 가혹함을 강조했다. 삼성SDI 제공
삼성SDI의 전기차용 배터리가 1t 이상 하중을 견디는 시험을 받고 있다. 이 회사 직원이 찡그린 표정의 이모티콘을 리터칭, 시험의 가혹함을 강조했다.
삼성SDI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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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I 울산사업장 ‘안전성 평가동’에서 전기차용 배터리를 긴 못으로 관통시키는 품질 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삼성SDI 제공
삼성SDI 울산사업장 ‘안전성 평가동’에서 전기차용 배터리를 긴 못으로 관통시키는 품질 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삼성SDI 제공
●가혹의 끝… 관통하고 불내는 전기차 배터리

미래 자동차의 핵심 기술로 꼽히는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안전성 시험은 가혹함의 끝을 보여 준다. 삼성SDI의 울산사업장에 설치된 배터리 내구성 시험장인 ‘안전성 평가동’에서는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적용되는 중대형 배터리 성능을 집중 테스트한다. 이 안에서 배터리는 압축, 관통, 낙하, 진동, (자동차) 급정거, 전복 사고 시 회전, 높은 전류로 충전하는 과충전, 고열, 열충격 등을 시험받는다. 그러니까 1t 이상 무게로 눌러 보고, 긴 못으로 배터리를 찔러 관통시키고, 일부러 충전 단자도 잘못 꽂아 보고, 가끔 배터리에 불도 낸다.

삼성SDI 관계자는 “차량 사고가 나거나 전복됐을 때 배터리가 폭발해 2차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자체로 비극일 뿐 아니라 전기차 산업 자체가 수요를 잃을 수도 있다”면서 “어떤 경우에도 안전한 배터리를 만드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고 설명했다. 각종 시험을 토대로 삼성SDI는 튼튼한 알루미늄 케이스에 배터리 소재를 넣는 ‘캔 타입’ 기술, 내부 가스 방출 기술 등을 개발했다.

다양한 제품의 ‘가혹 테스트’는 얼마나 자주 시행될까. 제조사들은 “시간과 비용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많이”를 외쳤다. 예컨대 올레드TV를 생산하는 LG전자 구미사업장의 시험실은 포장까지 끝난 제품 창고 앞에 있다. 이 시험실에서 무작위로 선택한 올레드TV의 포장을 뜯어 72시간 동안 껐다 켜기부터 고온에 방치하기까지를 반복한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2016-08-2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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