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안 된 사람이 메르스 감염 확진… 환자 밀접접촉한 의심자는 의료진 만류에도 출국
격리대상자가 아닌 사람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감염되고 환자와 밀접접촉한 발병 의심자가 외국으로 출국하는 등 메르스에 대응하는 보건당국의 방역망에 구멍이 뚫린 상황이 잇따라 나타났다.보건당국은 그동안 발병 우려가 있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자신하며 지나친 공포감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방역망에 구멍이 뚫리며 국민불안을 오히려 키우고 있다.
28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이날 새롭게 감염 사실이 확인된 F(71)씨는 최초 메르스 환자 A(68)씨와 5월 15~17일 같은 병동에 머물렀다. F씨는 A씨와 같은 병동에 있었지만 같은 병실은 쓰지 않아 보건당국의 자가(自家)격리 대상에서는 포함되지 않았던 사람이다.
F씨의 메르스 확진은 그동안 밀접접촉자를 대상으로 하는 ‘자가 격리’와 이 중 메르스 감염이 확인된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국가지정격리병동 격리’라는 두 가지 틀로 감염 확산을 막아왔던 보건당국의 방역망이 뚫렸다는 의미가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그간 적절한 개인보호장비(가운, 장갑, N-95 마스크, 눈 보호장비 등)를 착용하지 않고 환자와 2m 이내에 머문 경우, 같은 방 또는 진료·처치·병실에 머문 경우, 환자의 호흡기 분비물과 직접 접촉한 경우만을 밀접접촉자로 보고 자가격리하고 나서 상황을 관찰해왔다.
F씨의 병실과 A씨의 병실이 10m나 떨어져 있고 두 사람이 화장실을 같이 쓰지도 않아 F씨는 보건당국의 기준으로는 밀접접촉자가 아니어서 관리대상자에서도 제외됐지만, 결국 메르스 감염자로 확진을 받았다.
보건당국은 뒤늦게 F씨처럼 기존 기준에서 밀접접촉자는 아니지만 메르스에 감염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당시 입원환자들을 일일이 추적해 밀접 접촉 혹은 증상 발현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
F씨는 증상 발현 전에는 자택에서 머물다가 25일 증상이 나타나면서는 다시 병원으로 이동했고 27일부터 국가지정격리병원에 머물고 있다.
보건당국은 메르스 환자와 밀접 접촉했고 이후 발열 증상이 있었지만, 중국으로까지 출국한 K(44)씨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K씨는 세 번째 환자 C(76)씨의 아들이자 네 번째 감염자 D(40대 여성)의 동생이다. 병문안을 위해 ⓑ병원을 방문해 첫 환자 A씨와 C씨가 입원한 병실에 4시간가량 머물렀지만, 보건당국에 이 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보건당국도 C씨와 D씨의 감염 확진에도 불구하고 K씨의 존재에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한 가족에서 두명이나 감염됐다면 당연히 나머지 가족의 존재, 이들에 대한 관리는 기본이었다. 보건당국의 결정적 실수라고 볼수 밖에 없다.
당국의 통제를 받지 못한 사이 K씨는 발열 등 증상이 발생해 22일과 25일 한 병원의 응급실을 방문했지만, 보건당국에 이런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다.
뒤늦게 K씨의 존재를 알게 된 질병관리본부는 K씨의 부인, K씨가 방문한 의료기관의 의료진, 직장 동료, 중국행 항공기에서 주변에 앉았던 승객과 승무원 등 200여명을 찾아 나섰지만 ‘사후약방문’이었다.
질병관리본부가 한사람을 놓치는 바람에 수백명을 감염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우를 범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한편 보건당국이 관리 대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조사 대상자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상황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사실을 모두 밝히지 않거나 거짓을 말하면 방역당국이 밀접접촉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K씨는 가족인 C씨와 D씨가 K씨의 방문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이후 증상이 생겨 병원을 찾았을 때에도 K씨가 의료진에게 자신의 가족이 메르스 감염자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의료진은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됐지만, 이틀이나 지나고서 보건당국에 신고했으며 K씨는 의료진의 중국출장 취소 권유를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보건당국 관계자는 “초기 역학조사 과정에서 의심자를 찾아내지 못한 것은 잘못”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환자, 혹은 밀접접촉자들이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면 감염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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