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안 2주만에 소득연계→국민연금연계
진영 전 보건복지부장관 ‘사퇴 파동’을 불러온 기초연금 정부안 결정 과정과 정황이 국정감사에서 점차 드러나고 있다..14일 국회 보건복지위의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문건과 증언 등에 따르면 복지부는 적어도 지난 8월 30일까지는 기초연금 수령액을 소득인정액(소득과 재산을 모두 고려한 소득환산액)에 연계하는 방식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8월 30일 진 영 당시 복지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기초연금 추진계획을 보고한 지 며칠 후 분위기는 급반전됐고, 9월 13일 복지부 담당 국장은 진 전 장관에게 구두로 보고한 후 청와대 실무자에게 이메일로 내용을 전달했다. 25일에는 정부안이 언론을 통해 공식 공개됐다. 이 과정에서 진영 장관의 결재는 없었다.
국감에서 공개된 문건과 증언으로 기초연금 정부안 결정까지 과정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 정부안, 국민행복연금위원회 가입단체 의견 아니다
정부는 지난 3월 국민행복연금위원회를 구성해 기초연금 설계 방안에 관한 여론을 수렴했다. 위원회는 지난 7월 기초연금의 몇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4개월간의 활동을 종료했다.
국민행복연금위는 당시 ▲ 70% 노인(인구비중 고정)에게 소득인정액을 기준으로 최대 월 20만원에서 차등지급 ▲ 70% 노인(인구비중 고정)에게 국민연금 소득재분배 부분(A값)을 기준으로 최대 월 20만원에서 차등지급 ▲ 80% 노인에게 월 20만원을 정액 지급 등 크게 세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복지부는 국민행복연금위 논의 결과를 토대로 본격적인 정부안을 준비했다. 그간 복지부는 국민행복연금위원회에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연계안이 소득수준 연계안과 함께 나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국감에서 국민행복연금위 가입자단체들은 두 연금의 연계안을 지지한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영찬 복지부 차관은 ‘정부안은 어느 단체에서 나온 안이냐’는 김성주(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김상균) 국민행복연금위원장이 (위원회 활동) 마지막에 권고했다”고 답변했다.
◇ 복지부, 박 대통령에 소득수준 연계안 제시
복지부는 기초연금 추진계획을 만들어 8월 30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박 대통령이 진 장관으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았다. 청와대의 최원영 고용복지수석과 장옥주 보건복지비서관 그리고 이태한 복지부 인구정책실장도 참석했다.
이언주(민주당) 의원이 국감에서 공개한 복지부가 청와대에 보고한 주요정책 추진계획 보고문건을 보면, 복지부는 당시 “기본안(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연계안)의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제도가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본안의 효과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면서 “소득인정액 차등방식으로 기초연금을 도입해 현 노인세대의 빈곤문제를 완화하고, 제도적 여건이 갖추진 시점에 기본안의 취지에 따른 기초연금제도로 전환하자”는 결론을 내놨다. 박 대통령이 직접 거론한 적 있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연계안 대신 소득수준에 연계한 방식을 제시한 것이다.
이태한 실장은 국감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보고를 받은 후 진 장관이 책임지고 제대로 만들어보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박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하라는 주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최원영 수석이 “소득수준에 연계할 경우 20만원 전액을 받는 현세대 노인 수가 너무 적다”는 문제점을 제기했다고 이 실장은 전했다.
◇ 복지부, 대통령 보고 후 국민연금 연계안으로 급선회
대통령 보고 후 며칠 만에 복지부는 국민연금 가입기간 연계안으로 급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특히 9월 3일께 청와대에서 복지부에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연계하는 방식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용익 의원은 국감에서 “9월 3일께 복지부 출신의 박민수 청와대 행정관이 복지부를 직접 찾아와 국민연금과 연계안을 종용했고, 최 수석이 차관에게 전화를 해서 (연계안을) 받으라고 했다는 말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차관은 “전화 통화는 했지만 전문가 의견에 관한 대화를 나눴던 것으로 기억한다”고만 답했고, 류근혁 연금정책과장은 “박민수 행정관과 수시로 만나 추계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고 답변했다.
◇ 정부안 보고·발표에 과정에 진 장관 결재 안해
복지부는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기초연금 수령액을 연계하는 방식을 정부안으로 확정해 13일 청와대 실무자에게 이메일로 보고했다. 또 25일에는 언론을 통해 정부의 최종안을 공식 발표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당시 진 장관의 서면 결재는 없었다.
14일 오전 국정감사에서 이 차관은 “9월 중순 정부안을 청와대에 서면 보고할 때 진 전 장관 결재를 받았다”고 말했으나 오후 국감에서 이 답변이 뒤집혔다.
양성일 복지부 연금정책관은 “(진영) 장관에 보고 드리고 실무자가 청와대 행정관에게 안을 보냈다. 장관의 문서 결재는 없었다”고 밝혔다.
복지부가 기초연금 정부안 결정해 청와대에 보고한 시기는 진 전 장관이 사퇴를 결심하고 외부에 알린 때와 겹친다.
진 전 장관은 사퇴설이 불거진 후 지난달 24일 사우디아라비아 출장지에서 기자들에게 “ 보름 전에 그런(사퇴) 생각을 하고 주변에 말한 건 맞다”고 말했다.
한편 15일 국회에서 열리는 이틀째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기초연금 정부안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진다. 이날 국감에는 국민행복연금위원회 위원들과 국민연금연구원장 등 전문가들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야당은 국민행복연금위원회 증인 신문에서 기초연금 정부안의 문제점을 집중 부각시키고, 국민연금 가입자단체의 여론과 무관하게 국민연금 정부안을 추진한 ‘보이지 않는 손’을 밝혀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에 맞서 여당은 증인신문에서 정부안이 행복연금위원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나온 방안이라는 점과 정부안에 대해 잘못 알려진 점을 제대로 알리겠다고 맞서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