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기존 신용등급, 인플레로 투자자 피해만 키워”
동양그룹 사태의 여파로 ‘독자 신용등급’ 제도 도입이 더욱 요원해지게 됐다. 이는 모기업 등 외부 지원을 배제한 개별기업의 독자적인 신용등급을 공개하는 것이다.기존의 기업 신용등급은 모기업의 지원 가능성 등을 고려해 매기기 때문에 신용위험에 대한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계속됐다.
웅진, STX에 이은 동양 사태에서도 신용등급 인플레로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7일 “작년 이후 국내외 경제 사정이 좋지 않고 업종별로도 자금조달이 쉽지 않아 독자 신용등급 제도 도입을 고려하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도 “지금 보류한 이유가 독자평가를 하면 신용등급이 모두 하향조정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며 “지금 도입하면 피해를 보는 기업이 너무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와 금감원 모두 독자 신용등급 도입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금융위는 작년 3월에는 ‘신용평가시장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며 기업 자체의 기초여건(펀더멘탈)을 독립적으로 평가한 독자 신용등급과 외부 지원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최종등급을 분리해 발표하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자 돌연 독자 신용등급 도입을 연기했다.
독자 신용등급을 도입하면 당장 신용등급이 올라가는 기업보다 떨어지는 기업이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웅진, STX 사태 이후 회사채 시장 양극화가 더욱 심해져 최근 무보증 3년 우량(AA-), 비우량(BBB-) 회사채 간 스프레드(금리 격차)는 5.7%대를 보이고 있다. 1년 전에 5.4%대를 보이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올라갔다.
동양그룹이 자금난으로 계열사들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는 상황까지 벌어지면서 독자 신용등급 도입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 됐다.
독자 신용등급을 도입하면 기업들의 자금난이 심화할 가능성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 신용등급 평가는 기업의 신용위험에 대해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업이 신용평가사에 비용을 주고 등급을 받는 상황이어서 기업이 오히려 ‘등급 쇼핑’에 나선다는 지적도 있다. 등급 인플레이션이 심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기업이 자기 돈을 내고 등급을 받는데 자기 쪽에 우호적인 곳을 선택하지 않겠느냐”며 “평가가 마음에 안 들면 취소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으면 공시도 못한다”고 설명했다.
부적절한 신용 평가는 결국 해당 채권에 투자하는 투자자 피해를 키울 수밖에 없다.
LIG건설이나 진흥기업 사례에서 보듯 모회사의 지원 가능성을 믿고 투자했다가 워크아웃 등으로 외부지원이 끊겨 투자자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제 상황이 좋을 때보다 좋지 않을 때 더욱 정밀하게 평가해 신용위험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독자 신용등급 도입이 시급해 보인다.
신용평가사들은 지금도 내부적으로 독자 신용등급을 매기고 있지만 공개만 하지 않을 뿐이다. 제도가 도입만 되면 바로 시행할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