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회계법인에 10년 감사받아…”정들면 유착”

특정 회계법인에 10년 감사받아…”정들면 유착”

입력 2012-02-08 00:00
수정 2012-02-0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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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기업의 외부감사를 특정 회계법인이 장기간 맡는 일이 적지 않아 검은 공생관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기업 외부감사는 오랫동안 삼일ㆍ안진ㆍ삼정ㆍ한영 등 소위 회계법인 ‘빅4’의 차지였다.

감사 대상인 기업의 지배주주나 경영진이 돈을 주고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을 선임하는 구조에서 장기 계약은 감사인의 독립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 등에서는 장기 감사인 교체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국내에서는 한시적으로 시행했다가 감사의 질을 저하한다는 이유로 폐지됐으나 최근 다시 논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 삼성전자ㆍ현대차 감사인 10년간 동일

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시가총액 기준 100대 기업 가운데 삼성전자 등 11곳은 2002~2011년도 10년간 동일 회계법인이 감사를 벌였다.

삼성전자와 LG화학, 삼성생명, LG전자,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등 6곳은 삼일이 맡고 현대차, 삼성카드, 한라공조, CJ 등 4곳은 안진이, 신한지주는 삼정이 각각 담당했다.

그 외 5년 이상 동일한 회계법인 감사를 받은 대기업은 기간별로 9년 1곳, 8년 3곳, 7년 5곳, 6년 7곳, 5년 17곳 등이었다. 대부분 빅4가 맡았다.

올해 100대 기업의 감사인도 삼일 36곳, 안진 27곳, 삼정 26곳, 한영 11곳 등으로 빅4가 독식했다. 10년 전에는 빅4 외에 안건 등 다른 5개 회계법인이 100대 대기업 17곳의 감사를 담당했다.

대기업의 감사인 선임이 빅4로 집중된 것은 대형 회계법인의 감사 서비스와 질이 높기 때문이다.

이들 회계법인은 글로벌 회계법인과 파트너십도 맺고 있다. 삼일은 PWC, 안진은 딜로이트, 삼정은 KPMG, 한영은 언스트앤영과 각각 제휴하고 있다.

그러나 한 기업의 외부감사를 특정 회계법인이 10년씩 맡게 되자 유착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회계법인이 장기간 일감을 주는 ‘고용주’의 비위를 거스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비자금 사건이 수시로 터지지만, 그동안 외부감사에서 적발된 사례는 거의 없다. 최근 김승연 한화 회장의 배임ㆍ횡령 사건이나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계열사 자금 횡령 사건도 마찬가지다.

대형 회계법인 출신의 한 회계사는 “감사를 하다 보면 회사 관계자와 친해지고 점점 유리한 결과를 제시하기도 한다”며 “작은 회계법인이 코스닥 기업을 감사할 때 더 많이 생긴다”고 말했다.

◇ ‘장기감사인 교체’ 부활 건의…금융당국 “어렵다”

일부 회계법인은 작년 말 권혁세 금감원장과의 간담회에서 장기 감사인 교체 제도를 다시 도입할 것을 건의했다.

상장사는 3년마다 감사인을 선임하는데 두 차례(6년)까지만 동일 회계법인을 선임하고 세 번째는 다른 회계법인으로 바꾸도록 하는 것이다. 뉴욕 증권거래소, 런던 거래소 등에 상장된 회사는 예외다.

지난 2003년 SK글로벌의 분식회계로 시끄러울 때 감사인과 회사의 유착관계 방지 차원에서 이 제도가 도입됐다가 수년 후 업계의 반발이 심해지자 폐지됐다.

감사인의 잦은 교체는 감사의 질을 저하한다는 논리가 작용했다. 복잡한 대기업 감사를 새로 맡으면 회사 업무 파악에만 수년이 걸린다는 게 폐지론자의 주장이다.

또 교체 때마다 수수료 할인 경쟁이 심해 그만큼 감사투입 시간이 줄어드는 등 부실감사 우려가 높았다.

한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감사인을 한번 정하면 회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프로세스 개선이나 자문이 가능해지는데 자주 바꾸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러나 감사인이 바뀌지 않으면 독립적인 감사를 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런 분위기에 맞춰 지난해 말 권혁세 금감원장과 주요 회계법인 대표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는 장기감사인 제도 부활을 건의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금감원 관계자는 “감사인이 계속 동일하면 기업과의 유착 관계가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장기감사인 교체 제도는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다. 현재로서는 한번 시행했다가 폐지한 것을 다시 도입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 감사기간 연장·사후규제 강화 등이 대안

장기감사인 교체 제도에 관해서는 회계법인마다 입장이 다르다. 이미 자리 잡은 법인은 기존 고객을 놓칠 수 있으니 반대하고, 새로 시장에 진입한 법인은 영역을 확장하려고 찬성하는 것이다.

김지홍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요한 것은 감사의 품질이다. 품질을 엄격하게 평가해서 우수한 회계법인은 현행 제도를 유지하고, 부실한 법인에는 장기 감사인 교체 등을 도입하는 이원화가 한 방법이다”고 제안했다.

업계에서는 감사 시스템을 완전히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확실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한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감사인에 충분한 시간을 주는 동시에 시간당 수수료를 올려주면 부실 감사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상장사의 95% 이상이 12월 결산법인이라 매년 1~2월에 업무가 집중된다. 외국에서는 작은 기업도 한 달 이상 감사를 하는데 구조상 그렇게 할 수 없다. 게다가 3월 이후에는 감사 말고 다른 일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후 규제 강화, 감사인 지정제도 등도 전문가들이 제시한 개선 방안 중 하나다.

정윤모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상장사와 회계법인의 유착 가능성을 이유로 사전 규제를 하는 것은 어렵다. 사후적인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채이배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연구원은 “감사인의 독립성을 위해 금융위나 한국거래소 등 감독기관이 감사인을 지정해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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