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카우트’ 박철민 인터뷰

영화 ‘스카우트’ 박철민 인터뷰

입력 2007-11-10 00:00
수정 2007-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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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시기를 풍미하는 조연들이 있다. 비중이 크건 작건 탄탄하고 안정된 연기로 작품마다 딱 알맞게 ‘간’을 맞출 줄 아는 사람들. 요즘 ‘충무로의 소금’으로 각광받는 배우는 박철민(40)이다. 그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쉴새없이 까불어 대고 전주 비빔밥처럼 맛깔스러운 대사로 관객의 배를 부르게 만드는 타고난 능력의 소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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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의 흥행으로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져 “이제 좀 고상하게 보여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역시 타고난 습성을 버릴 수 없다.”며 헐렁한 면 티셔츠와 낡은 청바지를 입고 나타난 그.“저, 생맥주 한 잔 시켜도 될까요?” 300㏄ 맥주 한 잔과 땅콩 한 접시가 테이블 위에 놓여졌고 말도 웃음도 술술 풀려 나왔다.

‘화려한 휴가’의 택시기사 인봉으로 관객들을 울리고 웃겼던 그가 이번엔 전라도 깡패로 분했다. 새 영화 ‘스카우트’에서다. 짧게 잘라 내린 앞머리와 코믹하게 붙인 콧수염, 몸매가 확연히 드러나는 딱 달라붙는 노란색 면 티셔츠. 그가 맡은 서곤태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진다. 과거 ‘한 주먹’했지만 짝사랑 하는 여주인공 세영 앞에서 한없이 수줍어하고 눈도 제대로 못 맞추는 소심남.

느닷없이 나타난 세영의 옛 애인 호창에게 홀로 위기감을 느끼며 비장한 어조로 ‘비광詩’를 읊는다.

“나는 비광/광임에도 존재감 없는 비운의 광…그대의 오광 영광을 위해 꼭 필요한 것도 나 비광…나는 비광/없어봐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 슬픈 광”

영화를 연출한 김현석 감독이 직접 지은 이 시는 서곤태의 처지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것이지만 지금까지 영화에서 박철민이 해온 역할을 제대로 짚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양념처럼 자신을 녹여 다른 배우와 영화를 돋보이게 해왔으니 말이다.

연극영화과를 나와 성우를 지냈던 큰형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한 집안에 두 명의 ‘딴따라’는 안 된다.”는 부모님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 경영학과를 택했지만 대학 문턱을 넘자마자 연극반에 투신했다.“목욕비나 벌어라.”라는 친구들의 권유에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룬 ‘부활의 노래’로 데뷔했다. 대학로 연극판과 드라마·영화의 단역으로 활동해오던 그의 오늘을 만들어준 영화는 2003년작 ‘목포는 항구다’이다.

연극 ‘밥’을 보고 그를 눈여겨 본 김지훈 감독은 뒤풀이까지 쫓아와 “형은 내가 키워줄 거야!” 호언장담했다.“맹랑한 놈이네.” 했지만 기분이 좋아 밤새 술잔을 기울였고 인연은 그렇게 맺어졌다. 김 감독은 ‘목포는’ 이후 ‘화려한 휴가’에도 그를 기용, 그가 ‘뜨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김현석 감독 또한 연극 ‘늙은 도둑 이야기’를 보고 그에게 반했고 초등학교 선후배라는 ‘학연’이 둘 사이를 더욱 끈끈하게 꿰었다.“배우의 매력을 알고 그걸 극대화시켜 전해주는 감독을 만났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죠. 저는 인복이 많아요.”

그는 영화마다 명대사를 토해내기로 유명하다. 그것도 순전 애드리브로. 애드리브는 순간의 기지로 나오는 것이지만 그러기까지 그가 기울이는 노력은 상당하다.“머리가 나빠서 대사를 수없이 외웁니다. 입술과 뇌, 그 다음 가슴에도 대사를 입력해야 감정이 나와요. 똑같은 대사를 수백 번 반복하다 보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형용사도 바꿔보고 직유법을 은유법으로 바꾸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러다가 ‘물건’들이 건져진다. 그가 꼽은 최고의 대사는 ‘목포는’의 가오리가 뱉은 대사.“쉭쉭∼, 요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여. 쉭쉭∼, 요것은 바람을 가르는 소리여. 봐봐!입은 가만있잖여.”이 영화로 그는 ‘제2의 송강호’라는 평도 들었고 CF도 찍어 두 딸의 어깨도 으쓱하게 만들어줬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최대한 자제할 것을 주문받았고 그대로 따랐다. 과묵하게 말없이 감정을 더 실으려고 노력했다.“곤태가 세영을 바라볼 때마다 눈을 약간씩 젖게 했어요. 모르셨죠? 아∼, 그게 보여야 되는데….(웃음)”

그가 꼽는 영화 속 명장면은 경찰서 습격 장면. 세영을 구하기 위해 호창이 전경들 머리 위로 다리처럼 놓여진 방패를 밟고 가는 장면에서 펑펑 울었다고 했다.“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김 감독이 천재 같아요. 드라마를 꼼짝 못하게 끌고 가는 힘에 감탄했죠.”

올해 영화만 네 편째. 시간 많기로 소문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가족과 함께 보낼 여유를 찾기 힘들 정도로 바쁘다. 슬슬 주연에 대한 욕심도 생기지 않을까? “(그런 질문)가끔 듣습니다. 그런데 전혀 없습니다. 정상은 좁잖아요. 바람도 세고 경쟁도 심하고 아래만 보이고. 조연들끼리는 경쟁 안 하거든요. 공간 넓고 먹을거리 많아서 너그러워집니다. 또 조연은 영화 전체를 책임지는 부담이 없으면서 다양하게 여러 인생들을 만날 수도 있잖아요. 지금 이 상태가 너무 행복합니다. 이거나 유지됐으면 좋겠어요.(웃음)”

다양한 인물들과 만남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현재 영화 ‘킬미’의 막바지 촬영 중이고 내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촬영을 앞두고 있다.TV 드라마 ‘태왕사신기’ 후속으로 방영되는 ‘뉴 하트’에서 흉부외과 의사로 나올 예정이다.“대사가 너무 어려워요. 요즘 고3처럼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하.”

글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2007-11-1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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