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없는 천재소녀, 부모 나라에서 가장 높이 날다

겁없는 천재소녀, 부모 나라에서 가장 높이 날다

임주형 기자
임주형 기자
입력 2018-02-13 23:28
수정 2018-02-14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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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교포 클로이 김, 여자 하프파이프 최연소 금메달

긴장이란 걸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이던 ‘천재 소녀’지만, 올림픽 챔피언으로 올라선 뒤에는 행복한 눈물을 훔쳤다. 금메달이 걸린 마지막 레이스 직전 트위터에 ‘배고프다’란 글을 남길 정도로 ‘강철 멘탈’을 지녔지만 ‘부모님 나라’에서 왕관을 쓰곤 외려 다른 모습이었다.
98.25점 무결점 연기
98.25점 무결점 연기 재미교포 스노보더 클로이 김이 13일 강원 평창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생애 첫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날 결선 3차시기에서 고난도 공중묘기를 펼치는 장면을 연속 촬영했다.
평창 연합뉴스
재미교포 클로이 김(18)은 13일 강원 평창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린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최종 점수 98.25점으로 류지아위(89.75점·중국), 아리엘레 골드(85.75점·미국)를 여유 있게 제치고 시상대 맨 위에 섰다. 2000년 4월 23일에 태어난 클로이 김은 17세 9개월 나이로 첫 출전한 올림픽에서 정상에 올라 하프파이프 최연소 우승, 여자 스노보드 최연소 우승 기록을 고쳐 썼다.
경기를 마친 뒤 아버지 김종진(오른쪽)씨, 어머니 윤보란씨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평창 연합뉴스
경기를 마친 뒤 아버지 김종진(오른쪽)씨, 어머니 윤보란씨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평창 연합뉴스
클로이는 기자회견장에서도 쾌활하고 엉뚱한 매력을 그대로 발산했다.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면서도 함께 회견장에 온 류지아위, 골드와 셀카를 찍었다. 통역이 진행되느라 짬이 날 때는 골드를 향해 노래를 흥얼거렸다. “배고프다고 했는데 뭐가 가장 먹고 싶은가”라는 질문엔 “하와이안피자다. 기분이 좋아 뭐든지 다 잘 먹을 수 있다”고 거침없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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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 김이 13일 강릉 평창 메달플라자에서 진행된 평창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들어 보이며 춤을 추고 있다.  평창 연합뉴스
클로이 김이 13일 강릉 평창 메달플라자에서 진행된 평창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들어 보이며 춤을 추고 있다.
평창 연합뉴스
하지만 가족 얘기에 클로이 김도 숙연해졌다. 그는 “아빠가 날 위해 많은 걸 희생했다. 스노보드에 열정을 느낀 딸을 위해 일도 그만두고 뒷바라지에 나선 건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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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교포 스노보더 클로이 김이 13일 평창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우승한 뒤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눈물을 닦아 주는 어머니 윤보란씨의 손톱에 태극기 문양이 선명하다. 평창 연합뉴스
재미교포 스노보더 클로이 김이 13일 평창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우승한 뒤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눈물을 닦아 주는 어머니 윤보란씨의 손톱에 태극기 문양이 선명하다.
평창 연합뉴스
미국으로 잠시 건너가 클로이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외할머니 문정애(76)씨는 이날 손녀의 경기를 지켜보며 “아빠가 매일 같이 놀이공원에 가자고 조르는 클로이를 연간 정액권을 끊어 데리고 다녔다. 여자아이인데도 망아지를 겁 없이 탔다”고 되돌아봤다. 어릴 적부터 기운이 넘쳤다고 했다. 4.2㎏의 우량아로 태어나 뭐든지 잘 먹으며 활달한 아이로 컸다. 성인도 타기 쉽지 않은 롤러코스터를 네 살 때부터 즐겼다.

문씨는 시종일관 두 손을 꼭 모아 기도를 올렸다. 편안한 관중석을 예매했지만 외손녀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입석’에 자리했다. 클로이가 마침내 금메달을 확정하자 첫딸 윤미란(클로이의 첫째 이모)씨와 둘째 딸 윤주란(둘째 이모)씨, 사위 노환영(둘째 이모부)씨 등과 얼싸안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클로이가 한국을 찾을 때마다 이들은 늘 함께했다.

문씨는 “먼저 한우를 사 주겠다. 설 때는 떡국을 끓여 주기 위해 (시댁이 있는) 충남 예산에서 가래떡을 공수해 왔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윤주란씨는 “클로이는 어릴 때부터 천재성을 보였다. (사촌인) 우리 아이들도 스노보드를 시켜 보려 했는데 눈을 무서워하더라”며 웃었다.

부친 김종진(62)씨도 “(우리 딸이) 드디어 해냈다! 이제 시집보내도 되겠어”라며 활짝 웃었다. ‘Go♡ chloe’ 피켓을 들고 딸의 선전을 기원하던 김씨는 “클로이한테 ‘이무기가 용이 되는 날이다’라고 말했더니, 클로이는 ‘하하하’ 웃고 말더라”며 경기 전 긴장했던 순간을 되새겼다.

김씨는 “클로이는 100% 한국인이다.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핏줄은 한국인이다. 생애 첫 출전인 올림픽 개최지가 한국이고, 금메달까지 딴 건 기막힌 인연”이라고 기뻐했다. 이어 “부모는 자식에게 항상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로 답하는 자식은 별로 없다. 하지만 내 딸은 확실한 결과를 보여 줬다. 클로이가 넘어지지만 않으면 이 세상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1982년 미국으로 건너가 부인 윤보란씨를 만나 클로이를 낳았다. 클로이에게 ‘선’(善)이란 한국 이름도 지어 주고 집에서 우리말을 쓰게 하는 등 한국인임을 잊지 않게 했다. 또 25달러짜리 보드를 사 주고 속도를 내기 위해 양초 왁싱을 손수 했다. 여덟 살 때 스노보드 타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스위스 제네바로 이사를 가 기차를 두 차례나 갈아타고 프랑스 알프스에서 보드를 즐기게 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돌아와서도 이른 새벽 잠든 딸을 업어 자동차에 태우고 6시간 걸리는 메머드산 슬로프로 데려다준 부정(父情)으로 유명하다.

평창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평창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2018-02-14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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