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아름다웠던 이규혁의 ‘굿바이 질주’

[올림픽] 아름다웠던 이규혁의 ‘굿바이 질주’

입력 2014-02-13 00:00
수정 2014-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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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이 한창이던 1994년 2월 14일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의 올림피아 홀.

16살의 앳된 소년 스케이터가 출발선에 서서 총성을 기다렸다.

안간힘을 쓰며 500m를 달린 그의 기록은 38초13. 39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36위였다.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이규혁이 12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해안 클러스터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소치 동계올림픽 남자 1000m 경기에 출전해 경기를 마친 뒤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이규혁이 12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해안 클러스터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소치 동계올림픽 남자 1000m 경기에 출전해 경기를 마친 뒤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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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뒤 같은 트랙에서 열린 1,000m에도 출전한 이 소년은 1분15초92의 기록으로 경기를 마친 40명 중 32위였다.

연달아 하위권에 그친 이 소년의 이름은 이규혁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20년이 흘렀다.

이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역사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된 이규혁(36·서울시청)이 12일(한국시간)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 무대인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남자 1,000m에서 아들레르 아레나의 트랙에 섰다.

세계선수권대회 정상에도 숱하게 올라 봤고, 세계신기록도 세워 본 그에게 늘 좌절만을 안겨 준 올림픽이다.

고개도 숙여 보고 눈물도 흘려 봤지만, 그래도 또 도전하고픈 마음에 그를 지금까지 선수로 남게 한 소중한 무대이기도 하다.

작별의 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가슴 깊은 곳부터 온갖 회한이 몰려왔을 법도 하지만, 외국 선수들에게도 존경받는 베테랑답게 이규혁의 표정만큼은 평소와 그대로였다.

경기 시작 전에 미리 빙상장에 들러 일본 코치와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고, 코치와 스타트 훈련을 하며 몸을 풀었다.

출발선에 선 표정에도 흔들림은 없었다.

그리고 그의 귀에 들린 올림픽에서의 마지막 총성.

이를 악물고 낮은 자세로 뛰어나간 노장의 레이스는 뛰어났다.

첫 200m를 16초25에 끊은 이규혁은 600m 지점까지도 41초76으로 그때까지 레이스에 나선 선수 중 1위를 달렸다.

하지만 “끝까지 버티는 게 내 스타일”이라던 말과 달리 체력의 한계는 어쩔 수 없었다.

조금씩 자세가 무너진 이규혁은 결국 1분10초049로 기록이 떨어진 채 결승선을 지났다.

그의 마지막 올림픽이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수도 없이 레이스의 끝을 알리는 결승선을 지나 본 그답게 ‘올림픽의 결승선’을 지난 이규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천천히 링크를 돌며 한국 응원단이 보일 때마다 손을 흔들고, 허리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건넨 이규혁은 잠시 링크 펜스 위에 드러누워 가쁜 숨을 달랬다.

아들레르 아레나를 메운 러시아 관중은 아무것도 모른 채 이규혁과 함께 달린 이고리 보골륩스키(러시아)를 향해서만 열띤 박수를 쏟아냈다.

외로워 보이던 이규혁에게 보골륩스키가 먼저 다가와 인사를 나눴다.

이규혁은 늘 후배들을 챙기던 모습 그대로, 보골륩스키의 등허리를 두들겨 주며 격려하고는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 링크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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