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 척해도 벌에 쏘여도… 듣보잡, 하루 14시간 손 내밀었다

모른 척해도 벌에 쏘여도… 듣보잡, 하루 14시간 손 내밀었다

한재희 기자
입력 2016-08-19 23:06
수정 2016-08-20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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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외 금메달’ 쾌거 이룬 유승민의 IOC 선수위원 도전 25일

“선거운동 기간 동안 하루가 너무 길고 힘들었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으로 당선된 유승민(34)은 18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메인프레스센터에서 긴 한숨과 함께 이 같은 소감을 밝혔다. 그는 지난 25일간 험난했던 선거운동 기간을 회상하며 “2004년 아테네올림픽 메달을 딸 때는 훌륭한 동료와 코치, 응원단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비행기를 타고 혼자 와서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선거에 혼자 나갔다”며 “2004년에는 동료와 같이 환호했지만 이번에는 외로운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때는 기뻤다면 지금은 울컥한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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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한국시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당선된 유승민(왼쪽)이 지난 3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선수촌에서 외국 선수들에게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 선수위원 후보는 IOC 규정에 따라 언론을 통한 선거운동을 제한받아 이 사진은 당선자가 발표된 이날 공개됐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19일(한국시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당선된 유승민(왼쪽)이 지난 3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선수촌에서 외국 선수들에게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 선수위원 후보는 IOC 규정에 따라 언론을 통한 선거운동을 제한받아 이 사진은 당선자가 발표된 이날 공개됐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당선된 유승민은 출입 구역이 제한된 선수위원 후보자 AD(신분확인)카드(왼쪽)를 가지고 있다가 18일(현지시간) 모든 장소를 출입할 수 있는 AD카드를 새로 발급받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당선된 유승민은 출입 구역이 제한된 선수위원 후보자 AD(신분확인)카드(왼쪽)를 가지고 있다가 18일(현지시간) 모든 장소를 출입할 수 있는 AD카드를 새로 발급받았다.
이번 선거는 유승민에게 힘들 수밖에 없었다. IOC 선수위원은 206개국 1만여명의 선수 투표로 선출되는 만큼 인지도가 당락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데 함께 후보로 나선 걸출한 스포츠 스타들 사이에서 유승민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탁구 개인단식 금메달을 비롯해 4차례의 올림픽에서 금·은·동 한 개씩을 따낸 유승민은 국내에서는 유명 선수지만 세계적인 스타는 아니었다. 육상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 일본의 육상 영웅 무로후시 고지 등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웬만한 노력으론 어려웠다.

유승민은 끊임없이 발품을 파는 작전으로 낮은 인지도 극복에 나섰다. 지난달 23일 일찌감치 리우올림픽 선수촌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하고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선수촌 일대 버스정류장을 비롯한 곳곳에서 선수들을 만나면 무작정 인사를 건넸다. 그중 절반 정도는 인사를 해도 모른 척 지나갔고 한번은 유세 도중 벌에 쏘이기도 했지만 유승민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밤이 늦어 이제 숙소로 돌아갈까 하다가도 선수가 한 명이라도 보이면 발길을 멈추고 인사하기를 반복했다. 그는 “선수들이 버스를 타고 선수촌에 들어올 때가 힘들었다. 인사를 했는데 상대 선수가 인상을 쓰면 이날 시합 결과가 안 좋았던 것이라 미안했다”고 회상했다.

강화된 선거운동 규정도 유승민에게 큰 난관이었다. IOC에서 제작한 자료만 들고 서 있을 수 있고 팸플릿이나 현수막 등을 제작하는 것은 금지됐다. 선거와 관련한 언론 인터뷰는 금지됐으며 자신의 출신 종목을 드러내는 옷을 입을 수도 없었다. 오로지 일대일로 지지를 호소하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 자신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문대성(40)이 2008년 IOC 선수위원 선거 당시 태권도복을 입고 발차기를 했던 것과 같은 이색적인 홍보 방식을 유승민은 쓸 수 없던 것이다.

유승민은 이날 취재진 앞에서 당선 이후 새로 나온 AD(신분확인)카드를 몇 번이나 자랑했다. 선수위원 후보자로서 받은 기존의 AD카드로는 식당에서 밥도 못 먹게 돼 있어서 쿠폰을 따로 받아야만 했는데 새 AD카드로는 아무 데나 들어갈 수 있고 밥도 먹을 수 있다며 그동안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유승민은 “나도 선수생활을 오래했기 때문에 시합 전에 얼마나 민감하고 방해받고 싶지 않은지 잘 알고 있다”며 “나를 뽑아줬든 안 뽑아줬든 인사를 25일간 받아준 선수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리우데자네이루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2016-08-2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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