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100년 전 셜록 홈스 따라하는 법지리학 기술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100년 전 셜록 홈스 따라하는 법지리학 기술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21-07-07 17:16
수정 2021-07-08 02: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이미지 확대
명탐정의 대명사 셜록 홈스는 옷에 묻은 흙 부스러기만 보고도 어디서 묻은 것인지 금세 알아차린다. 법지리학자들이 홈스처럼 옷이나 자동차에서 채취한 흙이나 먼지를 화학 분석해 범죄자들의 이동 경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IMdB 제공
명탐정의 대명사 셜록 홈스는 옷에 묻은 흙 부스러기만 보고도 어디서 묻은 것인지 금세 알아차린다. 법지리학자들이 홈스처럼 옷이나 자동차에서 채취한 흙이나 먼지를 화학 분석해 범죄자들의 이동 경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IMdB 제공
‘명탐정’이라고 하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셜록 홈스’를 떠올립니다. 셜록 홈스가 등장하는 첫 작품인 ‘주홍색 연구’에는 친구 왓슨 박사가 홈스의 지식수준을 정리한 것이 나옵니다. 문학, 철학, 천문학 지식은 ‘빵점’ 수준이지만 지질학 분야에 대해서는 ‘실용적이지만 제한적임. 한 번 보고도 흙을 구별해 낼 수 있음. 산책에서 돌아온 그가 바지에 묻은 진흙을 보고 색과 점성 등으로 런던 어느 구역에서 묻은 것인지 설명해 줬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4개의 서명’이라는 작품에서 홈스는 친구 왓슨에게 ‘우체국에 다녀왔는가’라고 물어 그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홈스는 흙의 색깔을 보고 알아차릴 수 있었다고 설명하지요. 홈스가 등장했던 19세기 말 이런 장면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20세기 이후 과학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면서 소설 속 이야기는 점차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흙·먼지 등 화학 분석 통해 출처 밝혀내

호주 국립지구과학청, 호주연방경찰청, 캔버라대 국립수사과학연구센터, 플린더스대 연구팀은 100여년 전 홈스처럼 장비나 옷, 자동차에서 채취된 흙이나 먼지의 화학 분석을 통해 범죄자들의 이동 경로까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유럽 지구화학협회와 지구화학회 주관으로 7월 4~9일 열리는 ‘2021 골드슈미츠 지구화학 연례학회’에서 발표됐습니다. 골드슈미츠 지구화학 연례학회는 지구화학 분야에서 가장 큰 행사이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지난해부터 온라인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연구팀은 기존에 갖고 있던 지역별 토양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북부 캔버라 지역 중 260㎢를 정해 가로, 세로 각각 1㎞ 격자 단위로 나눈 뒤 격자별 토양 특성을 빅데이터로 만들었습니다. 그다음 무작위로 채취된 3개의 토양 및 먼지 시료를 받아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예측하도록 했습니다. 3개의 토양은 각각 60~120㎞ 떨어진 곳에서 채취됐으며 다른 지역의 토양과 섞이기도 했답니다.

연구팀은 이들 3개의 샘플을 푸리에변환 적외선 분광법, X선 형광분석법, 자기민감성 및 질량분광법으로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90%에 가까운 정확도로 토양과 먼지의 출처들을 밝혀냈다고 합니다.

●범죄자 이동경로 수사 도구로 활용 가능

연구팀은 지역별 고유한 식물의 DNA 데이터와 X선 광물학 기술과 이번에 개발한 토양·먼지 위치시스템을 통합하는 호주 국방부 프로젝트를 추가로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X선 광물학은 광물에 X선을 쏴 원자 배열에 따라 달라지는 X선을 관찰해 광물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입니다.

연구를 이끈 호주 국립지구과학청과 연방경찰청 소속 지구화학자인 파트리스 드 차리태트 박사는 “이번 연구는 지질학, 광물학을 포괄하는 새로운 형태의 법과학 기술”이라며 “아직 연구 초기 단계이지만 앞으로 범죄 수사에서 강력한 도구로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범죄를 예측하는 것뿐만 아니라 범죄 현장과 범죄자의 행적까지 정확하게 복원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제 명탐정은 직관에 의지하는 범죄학에 능통한 사람이 아니라 최신 과학기술에 능한 관찰력 뛰어난 과학자가 대신하는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2021-07-08 2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