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생인류 호모사피엔스, 순수 혈통 아니다

현생인류 호모사피엔스, 순수 혈통 아니다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18-08-23 02:00
수정 2018-08-23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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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러 등 고고학 공동연구 ‘네이처’ 게재

유골 화석, 빅데이터로 DNA 게놈 분석
혈연 관계·집단적 이동 등 고대사 파악


네안데르탈-데니소바인 혼혈 자녀 존재
유전자 1.7% 현 인류와 일치…교류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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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캐나다, 러시아, 영국 국제공동연구팀이 네안데르탈인 여성(왼쪽)과 데니소바인 남성(오른쪽)이 서로 만나 자식을 낳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현생인류의 조상인 크로마뇽인과 친척뻘인 인류이다.  사이언스 제공
독일, 캐나다, 러시아, 영국 국제공동연구팀이 네안데르탈인 여성(왼쪽)과 데니소바인 남성(오른쪽)이 서로 만나 자식을 낳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현생인류의 조상인 크로마뇽인과 친척뻘인 인류이다.
사이언스 제공
‘고고학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은 페도라 모자를 눌러쓰고 낡은 크로스백을 맨 채 유적을 찾아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세계 전역을 종횡무진 누비는 영화 속 주인공 ‘인디아나 존스’를 떠올린다.

19~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고고학자들은 보물 사냥꾼인 인디아나 존스까지는 아니지만 유물을 찾기 위해 먼지를 뒤집어쓰고 몸을 움직이는 현장 작업자 같은 분위기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최근 많은 고고학자들은 현장 작업도 하고 있지만 인공위성이나 컴퓨터 프로그램, 각종 실험기구에 둘러싸여 있는 과학자의 모습에 더 가깝다.

실제로 고고학계에서는 발굴된 유물의 DNA 분석을 통해 과거를 추적하는 ‘DNA 고고학’이라는 분야가 주목받고 있다. DNA 고고학은 유적지에서 발굴되는 유기체의 DNA를 분석해 과거 유전적 특징을 과학적으로 규명함으로써 혈연, 민족 간 유연관계, 집단이나 문화의 이동에 대한 고고학적 정보를 자연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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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네안데르탈인 엄마와 데니소바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딸의 뼈가 발견된 러시아 데니소바 동굴 인근 고고학 연구장소 전경.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제공
이번에 네안데르탈인 엄마와 데니소바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딸의 뼈가 발견된 러시아 데니소바 동굴 인근 고고학 연구장소 전경.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제공
DNA 고고학은 고고유전학(Archaeogenetics)이나 고유전학(Paleogenetics)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엄격하게 구분하자면 고고유전학은 고고학적 해석을 위해 분자유전학적 기술을 접목시킨 것이고 고유전학은 유전학적 입장에서 생물의 진화와 과거 생물의 특징에 대한 연구다.

DNA 고고학에서는 빅데이터 처리나 시뮬레이션 같은 첨단 과학기술도 자주 활용된다. 오래된 고대인의 뼈나 유품에서 미량의 DNA 조각을 채취해 분석할 경우 방대한 게놈 정보가 나온다. 방대한 데이터를 비교, 분석해 고인류의 복잡한 관계망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는 알고리즘과 빅데이터 처리기술은 고고학에 새로운 장을 열어 줬다.

실제로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 23일자에 실린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인류사연구소, 캐나다 토론토대, 러시아 국립과학아카데미 고고학 및 민족지학연구소, 국립노보시비르스크대, 영국 옥스퍼드대 국제공동연구팀의 연구결과만 봐도 DNA 고고학 연구가 얼마나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연구팀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작고 길쭉한 돌맹이처럼 보이는 크기 1~2㎝의 뼛조각들에서 DNA를 추출해 유전자 시퀀스를 분석했다. 그 결과 ‘데니소바 11’로 이름 붙여진 뼛조각의 주인은 네안데르탈인 엄마와 데니소바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사망 시 나이는 13살쯤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현생 인류는 호모사피엔스 1종만 존재하고 있지만 5만~6만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과 서아시아 지역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 시베리아와 동남아시아 지역에 살았던 데니소바인 등 최소 3종의 인류(호미닌)가 함께 공존했다.

그러다 네안데르탈인은 5만년 전부터, 데니소바인은 4만년 전부터 서서히 사라져 멸종하게 됐다. 이 때문에 고인류학계에서는 각 인류 종간 분리시기와 교배 여부는 인류 진화를 설명하기 위한 중요한 연구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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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러시아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뼛조각들. 네안데르탈인 엄마와 데니소바인 아빠 사이 딸의 것으로 밝혀진 이 뼛조각들은 ‘데니소바11’로 명명됐다.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제공
2012년 러시아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뼛조각들. 네안데르탈인 엄마와 데니소바인 아빠 사이 딸의 것으로 밝혀진 이 뼛조각들은 ‘데니소바11’로 명명됐다.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제공
2016년에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연구진은 시베리아 남부 알타이산맥 동굴에서 발굴한 네안데르탈인 화석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교배가 최소 10만년 전에 이뤄졌다는 사실을 ‘네이처’에 발표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사이에 교배가 있었다면 네안데르탈인과 동시대를 살았던 데니소바인과의 교배도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약 39만년 전 유전적으로 분리돼 다른 종이 됐다. 연구팀은 엄마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분석해 러시아 데니소바 동굴 부근으로 이동한 초기 네안데르탈인보다 서유럽에 살고 있었던 후기 네안데르탈인 유전자와 더 가깝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데니소바 11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한 결과 이 혼혈소녀는 현생인류와 1.7% 정도의 유전적 일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데니소바 11이 태어나기 이전 데니소바인,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조상 간 교류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스반테 파에보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박사는 “이번 단일 게놈분석만으로도 현생인류의 친척들 간 교류가 생각보다 더 잦았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며 “현생인류는 호모사피엔스의 단일 순수혈통이 아니라 인류의 다양한 친척종들과 교배해 유전자가 섞여 있는 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2018-08-2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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