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검사·변호사가 말하는 폐해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는 검사들 사이에서 ‘험지’로 통한다. 다른 부에서는 검사 한 명당 맡는 사건이 월 100건 정도지만 형사2부는 700건이 넘는 탓이다. 형사2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에 접수된 고소·고발 사건의 대부분이 형사2부로 배당되다 보니 형사2부 검사들이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고소·고발 남발의 피해는 검찰과 법원은 물론이고 제때 재판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현행법상 아무리 황당한 고소·고발 건이라도 수사기관은 여기에 대해 기초적인 조사는 해야 하고, 이는 수사력 낭비로 이어진다. 검찰 관계자는 “근거 없는 고소·고발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리면 검사까지 포함시켜 다시 고소를 하고, 그러고도 안 되면 법원에 재정신청을 하고, 여기에서 또 각하되면 판사까지 추가해 재고소를 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똑같은 내용의 고소를 신청인만 바꿔 1000여건 이상 제기하는 고소인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각종 이익단체들과 정치인들도 고소·고발에 뛰어들고 있다. 수도권 지역의 한 검사는 “요즘엔 진보나 보수를 막론하고 관련 사안이 나오면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고소나 고발을 하는 단체들이 종종 발견된다”며 “이런 사건들을 수사하다 보면 ‘국민 세금을 받으면서도 스스로 민원 해결사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고 밝혔다.
판사들 역시 “형사재판까지 올 필요가 없는 고소·고발 사건이 과도해 재판부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서울 지역의 한 판사는 “민사로 해결될 사건이 고소·고발을 통해 형사사건으로 바뀌어 재판에 넘어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재판부 입장에서는 고소나 고발을 한 피해자가 ‘과연 피해자가 맞나’ 의심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 피해자는 가해자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빚을 일부러 갚지 않았다는 식으로 과장해서 고소나 고발을 했다가 정작 법정에서 들통이 나는 경우도 있다. 한 수도권 지역 판사는 “고소 사건 재판을 하다가 피해자에게 ‘우리가 당신 돈 받아 주는 업체냐, 당신 때문에 억울한 사람(가해자)이 재판을 받고 있는 게 아니냐’고 질책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고소·고발을 통해 증거를 모으거나 가해자를 압박해 합의를 하려는 경우가 많다 보니 고소·고발 사건도 늘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이 때문에 정작 신속한 검찰 수사나 법원 재판이 필요한 사람들이 자기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2016-02-1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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