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가 정해준 ‘성적 욕망 부르는 부위’는 어디?

판사가 정해준 ‘성적 욕망 부르는 부위’는 어디?

최선을 기자
입력 2015-05-18 18:44
수정 2015-05-19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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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킹女 다리, 멀리서 찍으면 무죄?

●여성 하체 49차례 촬영男 무죄 선고

스키니진, 레깅스, 스타킹 등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은 여성만 골라 다리 등을 40여 차례에 걸쳐 ‘도촬’(몰래 사진을 찍는 행위)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성적 욕망을 유발하는 범죄적 특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법원마다 도촬에 대한 유무죄 판단을 달리하면서 성적 취향과 성범죄의 경계선 자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북부지법 형사9단독 박재경 판사는 여성의 동의 없이 하반신 등을 촬영한 A(28)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18일 밝혔다. A씨는 2013년 1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휴대전화로 지하철, 도로, 엘리베이터 등에서 만난 여성들의 특정 신체 부위를 49회에 걸쳐 촬영한 혐의로 지난해 9월 기소됐다.

A씨는 주로 지하철 건너편 좌석이나 맞은편 도로 등 자신과 떨어져 있는 여성을 표적으로 삼았지만 때로는 가까이 접근해 허벅지 아래를 찍기도 했다. 그는 법정에서 “평소 운동화나 구두 등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찍은 것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박 판사는 “쉽사리 믿기 어려운 변명으로, 특이한 성적 취향(페티시) 때문에 촬영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면서도 유죄로 판단하지 않았다. 박 판사는 A씨가 주로 개방된 장소에서 비교적 먼 거리를 두고 촬영한 점을 들어 “촬영 부위가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2008년 대법, 버스 안 촬영男엔 “유죄”

이런 가운데 사안마다 법원의 판결이 엇갈리고 있다. 대법원은 2008년 50대 남성이 마을버스에서 10대 여성의 치마와 허벅지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정면에서 촬영한 것을 두고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신체 부위”라며 유죄로 인정했다. 반면 지난해 수원지법은 미용실 여직원의 다리를 두 차례 촬영한 남성에 대해 “짧은 치마가 과도한 노출이라 보기 어렵고 다소 떨어진 거리에서 하반신 전체를 찍었기 때문에 수치심을 유발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음란’ 개념 모호… 판결 제각각

법무법인 로고스의 최진녕 변호사는 “‘음란’의 개념 자체가 규범적인 것이다 보니 법원의 판단이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라며 “전신사진보다는 특정 부위를 부각시켜 찍은 경우를 유죄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판결의 경우 요즘처럼 노출이 많은 시대에 다리만 찍어서는 음란하다고 보기 부족하다는 취지가 깔린 것 같다”며 “단순히 손만 잡은 경우를 추행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덧붙였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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