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으로 입 막은 채 계속 눈물 흘려
조현아(41)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실형이 선고된 것은 핵심 쟁점이었던 항공보안법상 항공기 항로변경죄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조 전 부사장 측은 ‘항공기가 실질적으로 17m만 이동했고, 항로에 대한 명백한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지상로까지 항로에 포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로변경죄가 인정된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다.호송 차량 속 조현아
‘땅콩 회항’으로 구속 기소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열린 12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서부지법으로 들어서는 호송 차량 안에서 조 전 부사장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운항 중인지 몰랐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안내방송과 좌석 벨트 등이 켜진 점 등을 통해 출발 준비를 마친 것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 출발했다는 취지의 말을 듣고도 항공기를 세우게 한 점, 다른 일등석 승객도 운항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점 등을 볼 때 항공기 항로변경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다만 국토부 조사를 방해했다는 혐의와 관련해서는 “조 전 부사장과 여모 상무가 공모해 유리한 조사 결과가 나오게 한 뚜렷한 증거가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조 전 부사장의 태도와 인식을 문제 삼기도 했다. 오 부장판사는 이번 사건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떨어뜨린 사건”이라고 규정한 뒤 “비행 서비스와 승객 안전을 책임지는 사무장을 땅콩과 관련한 서비스를 문제 삼아 비행기에서 내리도록 한 것은 승객 안전을 볼모로 한 지극히 위험한 행위”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현재 수감 생활 중인) 조 전 부사장의 고통의 무게보다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의 무게가 훨씬 무겁다고 보여진다”고 밝혔다. 이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근무에 어려움 없도록 대책을 수립한다고 했지만, 양심에 따라 행동한 박 사무장에게 조직 내에서 ‘배신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김모(여) 승무원과 박 사무장이 조 전 부사장으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한 진술도 판결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큰 이벤트가 필요한데, 공개 사과를 하는 데 협조해 달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김 승무원의 증언과 조 전 부사장이 이 사건의 발단 원인을 (여전히) 승무원들의 매뉴얼 위반 때문이라고 하는 점을 보면 (조 전 부사장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조 전 부사장이 초범이고, 향후 사회 생활에 상당한 지장을 받을 수 있는 데다 20개월 된 쌍둥이를 둔 어머니인 점을 고려해 형을 결정했다”고 양형 배경을 설명했다. 조 전 부사장은 최근까지 재판부에 모두 6장의 반성문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의를 입고 출석한 조 전 부사장은 1시간가량 진행된 공판 내내 두 손을 모은 채 초조함을 드러냈다. 앞선 공판에서 줄곧 고개를 숙였던 것과는 달리 이날 선고공판에서는 몸을 꼿꼿이 세우고 고개를 든 채 재판을 지켜봤다. 조 전 부사장은 재판부가 자신이 제출한 반성문을 읽을 때는 눈물을 훔치며 어깨를 들썩이기도 했다.
특히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하던 순간, 조 전 부사장은 나지막이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한쪽 손으로 입을 막은 채 계속 눈물을 흘렸다.
재판장이 자신이 쓴 반성문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얼굴을 양손에 묻고 흐느꼈다. 5m 떨어진 방청객 앞줄에서 울음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 2일 최후 진술에서는 “엄마의 손길이 간절히 필요한 저의 아이들에게 하루빨리 돌아갈 수 있도록 선처해주시기 바란다”여 읍소하기도 했다.
선고 전 오 부장판사는 조 전 부사장이 쓴 반성문 일부를 읽었다. 조 전 부사장은 반성문에 “제 잘못을 알고 있으며 피해자에게 정말 미안하다. 상처들이 가급적 빨리 낫기를 소망한다. 어떻게 해야 용서가 될지 모르겠다”라고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제가 여기(구치소) 오지 않았더라면 낯선 이의 손길을 고맙게 여길 수 있었을까란 생각이 든다. 30일간 제게 주어진 건 두루마리 휴지, 수저, 비누, 내의, 양말 두 켤레가 전부였는데 주위 분들이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샴푸, 린스 등을 빌려주고 과자도 내어주어 고마웠다”고 적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