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3500만 운전자 구한 ‘색깔 유도선’, 13년만에 칭찬받은 사연

전국 3500만 운전자 구한 ‘색깔 유도선’, 13년만에 칭찬받은 사연

권윤희 기자
권윤희 기자
입력 2026-01-08 17:55
수정 2026-01-1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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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서울역 교차로에 색깔 유도선이 보인다. 서울시 자료
서울시 서울역 교차로에 색깔 유도선이 보인다. 서울시 자료


2026년 1월 1일 0시.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병오년 새해를 알리는 ‘제야의 종’이 울렸다. 이날 함께 종을 울린 시민영웅 11명 가운데는 전국 3500만(운전면허소지자 기준) 운전자의 길잡이 ‘색깔 유도선’을 도입한 한국도로공사 직원 윤석덕씨도 있었다.

“분홍색 유도선을 따라가세요”

운전 중 교차로나 나들목, 분기점에 접어들면 내비게이션에서는 어김없이 이런 음성이 흘러나온다. 갈라지는 차로가 한 방향일 때는 분홍색, 두 방향일 때는 초록색 선이 나타나는데 운전자는 이 선만 따라가면 된다.

윤씨는 바로 이 도로 노면 색깔 유도선을 도입한 혁신의 주인공이다.

윤씨는 군포지사 근무 시절인 2011년 3월 서해안고속도로 안산분기점에서 난 사고를 계기로 색깔 유도선을 도입했다.

당시 승용차와 화물차가 서로 엇갈리며 급히 차선을 변경하려다 발생한 사고로 사망자가 나오면서, 해당 지사는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이때 윤씨는 집에서 물감과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노는 자녀들을 보고 ‘도로에 색칠을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당시 도로교통법상 흰색, 노란색, 하늘색, 적색 외에 다른 색깔을 도로에 칠하는 것은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관계 기관의 협조를 얻기도 어려웠고, 법을 바꾸는 건 긴 시간이 필요했다.

도로공사 본사도 “관련법 위반”이라며 사내 아이디어 발표에서 윤씨의 제안을 기각했고, 경찰청도 같은 우려를 제기했다.

이때 교통제한협의, 적극행정면책제 등을 활용해 색깔 유도선 현실화를 적극 도운 사람이 임용훈 인천지방경찰청 경감(당시 인천지방경찰청 11지구대 근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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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윤석덕씨.
2020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윤석덕씨.


관련법 위반 소지에도 도입, 교통사고 급감
언론 조명 후 도입 10년 만에 ‘합법화’ 성공
임 경감의 적극적인 협조로 윤씨는 2011년 5월 3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안산분기점에 색깔 유도선을 그리는 데 성공했다.

연평균 25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던 안산분기점에서는 색깔 유도선 도입 후 사고가 획기적으로 줄었다. 유도선 마련 후 6개월 동안 발생한 사고는 단 3건에 불과했다.

색깔 유도선이 교통사고 감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자, 관계 기관들도 공식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한국도로공사는 2012년 6월부터 내부 관련 지침을 만들고 수립한 설치 기준을 계속 개선해 나갔으며, 고속도로의 모든 분기점 등 전국에 색깔 유도선을 확대했다.

2017년 12월에는 국토교통부도 ‘노면 색깔유도선 설치 및 관리 매뉴얼’을 만들어, 표준화된 색깔 유도선이 전국에 도입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또 운전자가 더욱 쉽게 진행방향을 찾을 수 있게끔 색깔 유도선을 내비게이션 및 도로표지판과 연계했다.

하지만 관련법 개정은 더뎠다.

색깔 유도선이 언론 조명을 받고, 윤씨가 2020년 유명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한 뒤에야 법 개정에 속도가 붙었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 논의를 거쳐 2021년 5월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이 개정됐고, 색깔 유도선의 합법화가 이뤄졌다.

윤씨가 관련 정책을 제안한 지 꼭 10년 만의 일이다.

이제 색깔 유도선은 1000여개 고속도로뿐만 아니라 일반국도와 지방도로 등 사고 위험이 많은 구간에도 확대 적용됐고, 운전자 혼란에 따른 교통사고도 과거보다 80% 이상 줄었다.

“윤씨가 국회의원 100명보다 낫다”는 호평이 쏟아진 이유다.

다만 윤씨가 ‘국가의 칭찬’을 받기까지는 이후로 몇 년이 더 걸렸다.

정책 제안·도입 13년만에 ‘국가의 칭찬’윤씨는 2024년에야 행정안전부의 정부혁신유공자에 선정,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국민을 위한 윤씨의 공로가 인정되기까지 13년이 걸린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공직자를 ‘작은 신’에 비유하며 “조금만 신경 쓰고, 신속하게 움직이며 배려하면 죽을 사람이 산다”며 안전 분야에 특히 신경 쓸 것을 주문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제2의 색깔 유도선, 제3의 윤석덕이 나오려면 윤씨의 생각에 귀 기울이고 힘을 보탠 도로공사와 경찰청 직원들처럼, ‘작은 신’을 외면하지 않는 조직 문화와 적절한 포상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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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덕 한국도로공사 차장이 경기도 이천시 호법분기점에서 대전쪽으로 안내하는 노면 색깔 유도선을 가리키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제공
윤석덕 한국도로공사 차장이 경기도 이천시 호법분기점에서 대전쪽으로 안내하는 노면 색깔 유도선을 가리키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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