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빼면 밥도 지원도 다 끊길 텐데…” 폭염보다 무서운 쪽방촌 퇴거 명령

“방 빼면 밥도 지원도 다 끊길 텐데…” 폭염보다 무서운 쪽방촌 퇴거 명령

김우진 기자
김우진 기자
입력 2024-06-21 02:25
수정 2024-06-21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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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현동 고시원 가 보니

건물 곳곳에 건물주 철거 공고문
“한 달 만에 이사? 잠도 안 온다”
거동 불편한 주민, 선풍기도 아껴
활동가 “지자체가 적극 중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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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건물주로부터 퇴거 통보를 받은 서울 중구 회현동 A 고시원 쪽방에서 김영한(69)씨가 침대에 앉아있다. 김씨의 방에는 창문 하나 없다. 김우진 기자
지난 20일 건물주로부터 퇴거 통보를 받은 서울 중구 회현동 A 고시원 쪽방에서 김영한(69)씨가 침대에 앉아있다. 김씨의 방에는 창문 하나 없다. 김우진 기자
“서 있기만 해도 숨막히는 더위도 무섭지만, 쫓겨나는 게 더 무섭습니다.”

서울의 낮 기온이 35도를 넘어 ‘66년 만에 가장 더운 6월’로 기록된 다음날인 20일. 서울 중구 회현동 ‘쪽방촌’ A고시원 주민들은 찜통 거리로 나앉을 위기에 처했다. ‘건물 철거 및 리모델링으로 고시원 운영을 중지하겠다’는 건물주의 퇴거 통지를 받아서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쪽방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다쳐 거동이 어려운 같은 고시원 주민 장수현(74)씨를 간호하고 있던 곽민자(70)씨는 “이 정도 더위는 버틸 만하다. 쫓겨나면 그게 더 큰 문제”라며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도 있는데 한 달 만에 어떻게 살 곳을 찾을지 잠이 안 온다”고 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이날도 두 사람은 선풍기조차 틀지 않은 채 더위를 버텨 내고 있었다.

홈리스행동·빈곤사회연대 등 16개 단체로 구성된 2024홈리스주거팀에 따르면 이 고시원의 건물주는 건물 노후를 이유로 지난달 25일과 지난 12일 두 차례에 걸쳐 주민들에게 나가 달라고 통보했다. 이날은 건물주가 못박은 퇴거일이었다. 사람 1명이 겨우 설 수 있는 좁은 복도를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는 1.5평(4.9㎡) 남짓한 약 40개의 쪽방 대부분은 비어 있었다. 현재 9명 정도만 남은 고시원 대문에는 ‘단전, 단수, 가스 중지됩니다. 폐문 조치함’이라고 적어 건물 철거를 알리는 공고문이 붙어 있었다.

김영한(69)씨가 사는 쪽방은 창문도 없는 탓에 환기가 되지 않아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선반 위에 올려 둔 선풍기가 덜컹거리며 돌아가고 있었지만 더위를 식혀 주긴 역부족이었다. 김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방은 얻었냐’고 묻는 게 인사가 됐다”고 토로했다. 주민들은 쪽방촌에서 나가면 하루에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동행 식당, 쪽방 주민을 위해 제공하는 상담, 보건의료 지원 등을 이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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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뿐 아니라 다른 쪽방촌 주민들도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산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서울에는 3373개 쪽방에 모두 2283명이 살고 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주민 대부분이 고령이거나 장애가 있어 건물주 요구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퇴거하면 살아가기 막막한 처지가 대부분”이라며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2024-06-21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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