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 아니다?…“불법촬영→스토킹→살인, 전형적 페미사이드”

여성혐오 아니다?…“불법촬영→스토킹→살인, 전형적 페미사이드”

이슬기 기자
입력 2022-09-18 20:42
수정 2022-09-19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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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범죄’만 젠더 폭력 아냐
“2번 고소에도 기각·접근 못 막은
법원·경찰·검찰도 사건의 방관자”

18일 서울 중구 신당역 내 여자화장실 앞에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 추모공간이 마련돼 있다. 2022.09.18  김명국 기자
18일 서울 중구 신당역 내 여자화장실 앞에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 추모공간이 마련돼 있다. 2022.09.18 김명국 기자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을 계기로 젠더폭력과 여성 혐오 범죄에 대한 인식 전환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퍼지고 있다.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다”(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좋아한다는데 안 받아 주니 폭력적으로 대응한 것”(이상훈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 같은 발언이 강한 비판을 받는 이유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과 달리 신당역 사건은 아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보복범죄’로 봐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면식 여부는 혐오범죄의 구성요건이 아니며, 신당역 사건은 구조적 성차별이 빚어낸 페미사이드(여성 살해)”라고 말한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이 2017년 ‘한국여성학’ 제33권 제2호에 게재한 논문 ‘젠더폭력과 혐오범죄’는 ‘묻지마’ 여부가 혐오범죄를 구성하는 필수요건이 아니라고 말한다. 젠더폭력 사건들에서 피해자는 우연적으로 선별된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적대감을 표출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진다. 가해자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한 상대적 약자는 대체 가능한 불특정 다수로 확대되고, 특히 피해 가능성에 대한 여성들의 공감대는 확산된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정폭력도 집안의 일로 치부하고 간섭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나가 불평등한 남녀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젠더폭력으로 인정한다”며 “아는 사이에서 일어난 것이라 해서 가정폭력을 젠더폭력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전문가들은 불법촬영에 이은 스토킹, 살인으로 이어지는 ‘신당역 사건’은 ‘페미사이드’의 전형적인 메커니즘이라고 진단한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자신의 요구를 받아 주지 않는 여성의 태도를 자신의 남성성에 대한 가해 행위로 해석해 위해를 가하고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남성 권력’”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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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두 번이나 고소했음에도 용의자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 가해자의 접근을 막지 못한 경찰·검찰 등이 젠더폭력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허민숙 조사관은 “‘구조적 성차별’이라는 시스템 없이는 혐오범죄가 일어나지 않는다”며 “사법기관 등 가해자를 엄벌하는 대신 내버려둠으로써 살인이 일어나기까지 조력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2022-09-19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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