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에게 고발당할 뻔했죠”, 멧돼지 포획전문가 이종본

“암환자에게 고발당할 뻔했죠”, 멧돼지 포획전문가 이종본

박홍규 기자
입력 2021-04-01 11:18
수정 2021-04-01 13:48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14
자신이 만든 멧돼지 보급형 포획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종본(57)씨
자신이 만든 멧돼지 보급형 포획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종본(57)씨
‘생포한 멧돼지 148마리, 눈앞에서 놓친 멧돼지 27마리’

멧돼지 포획 전문가 이종본(57)씨가 멧돼지와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의 현재 스코어다. 녀석들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오른손 검지가 끊어질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포획틀을 직접 만들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결과다. 어쩌면 그가 살고 있는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에서 녀석들과의 전쟁은 이긴 듯하다. 더 이상 주변에서 멧돼지를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의 멧돼지 포획기술은 전국에 소문이 나 하루에도 많은 전화가 걸려온다. 한 번은 암환자가 무항생제 멧돼지 고기를 간절히 먹고 싶다고 하길래 거래 자체가 안 되는 걸 잘 알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에 고기를 보내줬다. 그러나 되돌아온 건 “멧돼지 고기를 먹고 병에 걸려다”며 고발하겠다는 거였다. 결국 합의금 200만 원을 건넸다. 또 한 번은 포획틀을 보러 왔다면서 기술자를 데리고 오는 몰상식적인 사람도 있었다. 이젠 사람을 안 믿는다고 한다.

이씨 자신도 고로쇠 수액체취 농사를 하다 멧돼지로 피눈물 나는 피해를 경험했다. 단순히 재미로 잡아보고 싶다고, 멧돼지 고기를 먹고 싶다는 호기심으로 전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멧돼지 때문에 농가피해를 당한 절실한 분들만 연락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지난 25일 경기도 양평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Q) 멧돼지 포획틀 개발 계기
산양삼 농사, 고로쇠 수액체취 농사를 25년 이상 크게 했다. 멧돼지 피해도 없었다. 산에서 우연히 봐도 ‘어, 멧돼지 지나가네’ 정도였는데 어느 날 보니깐 개체 수가 엄청 많아졌다. 고로쇠 나오는 시기는 일 년에 20일밖에 안 되는 데 멧돼지가 메인 호스를 끊어버리면 정말 환장하고 미치는 거다. 어마어마한 물이 없어지니깐 엄청 심각한 피해를 봤다. 어떻게 하면 이 놈들을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미쳤었고 밤새도록 연구했다. 꿈속에서도 돼지 잡는 꿈을 꿨을 정도였다. 그래서 포획틀을 만들게 됐다.

(Q) 시행착오도 많았을 텐데
포획틀 만들다가 오른손 검지도 끊어졌다. 처음 시작할 때 솔직히 너무 허술하고 경솔했다. 바닥도, 지붕도 안 만들었다. 어떻게 잡긴 잡았는데 차에서 내리지도 못했다. 너무 무서워서. 얼마나 날고뛰는지 결국 위로 뛰어넘어 도망갔다. 내 키보다 높이 만들어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안일함의 결과다. 그때부터 멧돼지를 만만히 보고 상대하면 절대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포획틀도 처음에는 전기용접으로 만들었는데 멧돼지가 들이받는 충격이 상상외로 세서 용접 부분이 깨지곤 했다. 녀석들이 그 약점을 알아서 그곳을 집중 공격해 탈출한다. 결국 몇 년 못쓰고 말았다. 그런 점을 보완했고 지금 하는 방식의 용접은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멧돼지 포획틀을 용접하고 있는 이씨
멧돼지 포획틀을 용접하고 있는 이씨
(Q) 지금까지 몇 마리 잡았는지
잡은 숫자를 다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148마리를 잡았지만 놓친 것도 27마리나 된다. 내 앞에서 문도 열고 나간 놈들도 있다. 두 마리가 들어왔는데 한 마리가 문을 코로 들고 열면 다른 한 마리가 그 틈으로 나가고 문을 든 놈도 결국 도망간다. 머리가 그 정도로 좋다. 그래서 지금은 포획틀 사이에 안전 고리를 만들어 연결한다. 그러면 절대 못 나간다. 나름대로 수없이 연구한 결과다. 꺼낼 때 역시 처음엔 많이 겁이 났지만 148마리를 꺼내보니 지금은 어렵지 않다.
이씨가 직접 잡은 멧돼지 모습(사진=유튜브 채널 ‘종본이’)
이씨가 직접 잡은 멧돼지 모습(사진=유튜브 채널 ‘종본이’)
(Q) 보급형 멧돼지 포획틀을 만들었는데
포획틀 공간이 크면 절대로 안 된다. ‘저돌적’이라는 말의 ‘저’가 돼지 ‘저(豬)’자를 쓰는 이유가 있다. 멧돼지가 포획틀 안에서 뒤로 물러갔다가 앞으로 들이받는 힘은 엄청나다. 이전에 만든 포획틀은 보급형 포획틀보다 20센티미터가 더 길어 비거리가 생겼다. 보급틀은 그 점을 보완했고 무게도 혼자 다룰 수 있게 55킬로그램 정도로 가볍게 만들었다. 시골에서 포획틀을 운영하시는 분의 연령층이 대부분 60~80대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Q) 한 번 설치해 놓으면 얼마 만에 잡히는지
하루 만에 잡은 적도 있고 늦게 잡히면 3~4개월 만에도 잡힌다. 멧돼지들이 더 영악해져 지능이 70정도는 되는 거 같다. 포획틀도 어설프게 만들어놓으면 자기를 잡는 거로 알고 접근을 안 한다. 그렇게 되면 애써 만든 포획틀이 무용지물 돼 버린다. 포획틀로 까치, 까마귀, 참매, 꿩, 멧돼지, 너구리, 오소리, 삵, 유기견, 고라니 등 열 가지 동물들도 잡아봤다.
포획틀의 원리를 직접 설명해 보이는 이씨
포획틀의 원리를 직접 설명해 보이는 이씨
(Q) 멧돼지를 유혹하는 가장 큰 유인재 ‘염분’
사람들은 멧돼지가 민가까지 와서 피해를 주는 이유를 정확히 모르는 거 같다. 단지 배가 고파서 내려오는 게 아니다. 멧돼지의 주식은 산에 있는 도토리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도토리를 많이 주워도 멧돼지가 먹을 건 충분하다. 민가까지 내려오는 이유는 몸속의 절대적인 염분 부족이다. 진짜 염분 부족해 미쳐버린 놈들은 사람도 공격할 수 있다. 그놈들을 염분으로 유혹하면 된다. 그래서 포획틀을 산 위에 갖다 놓으면 절대 안 잡힌다. 반드시 민가 옆에 설치해야 잡을 수 있다.

(Q) 멧돼지 생태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
멧돼지는 40~50마리의 무리를 이루며 공동생활을 한다. 우두머리는 암놈으로 모계사회를 이루며 하루 50~60킬로를 다니면서 체계적인 학습을 가르친다. 산을 많이 다니는 분들도 멧돼지 무리를 본 적이 별로 없을 거다. 저는 50~60마리의 무리를 직접 봤다. 그 녀석들은 민가에 안 내려온다. 암놈은 무리에서 시원찮은 것들을 도태시킨다. 자기 영역에서 살아남으려면 건강상태가 우수한 상태들만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도태된 놈들끼리 시집 장가가서 낳은 놈들, 즉 체계적으로 배운 것이 없는 녀석들이 실질적으로 민가에 내려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거다. 그 놈들을 잡으면 되는 거다.
(Q) 포획틀 주문량은 어떤지
전국으로 나간 게 꽤 된다. 실제로 피해를 직접 당하고 있는 농가들 위주로 많이 나간다. 그분들께는 잘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가르쳐 드린다. 자기 돈으로 구입한 분들은 돈이 아까워서라도 제가 가르쳐 준대로 잘 잡는다. 절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자체별로 80% 지원사업을 해줘 구입하신 분들은 ‘어차피 잡히면 잡히는 거고, 아니면 말고’ 라는 생각을 가진 분들도 꽤 있다. 그런 분들에겐 성과가 썩 좋지 않다. 좀 안타깝게 생각한다.

(Q) 멧돼지 잡았다고 연락 올 때
갑자기 전화와서 멧돼지 잡았다고 하면 심장이 쿵당쿵당 거린다. 과연 ‘어떤 놈이 잡혔을까’ 하면서 기대를 많이 하게 된다. 멧돼지 잡은 영상을 보내주면서 ‘종본이 사장님, 감사합니다. 멧돼지 잡아서 피해를 안 보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실 때 제일 만족스럽다. 저 나름대로 보내 주신 영상을 보면서 분석을 하고 제 경험치로 알 수 있는 좋은 정보를 드리기도 한다.

(Q) 멧돼지 처리는 어떻게
2018년 아프리카돼지열병 전까진 포획 허가 기간이 두 달밖에 안됐다. 그래서 몇 번이나 연장하며 잡았다. 당시 허가서엔 포획물은 자가 처리를 원칙으로 하되 상업적 유통, 소각은 금한다고 돼있었다. 그래서 먹어봤다. 총으로 잡은 멧돼지는 피가 살 속에 고여 있어 냄새가 나서 못 먹는다. 생포해서 잡은 건 완벽하게 피를 뺄 수 있고 질기다고 하는 얘기가 있는데, 그건 얼마든지 연육작용으로 부드럽게 할 수 있다. 그 상태에서 먹으면 최고의 맛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5일 안에 담당 군청에 신고해 지시를 받아야 한다. 그 말은 수거해서 소각을 시킨다는 뜻이다. 법적으로 자가소비가 안 된다.

(Q) 새끼 밴 멧돼지를 살려주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었는데
그 녀석을 살려줘서 욕을 많이 먹었다. 잡은 시기가 4월 중순쯤이었다. 잡아보니 배 밑에 큰 젖꼭지가 보였다. 젖꼭지가 크다는 뜻은 곧 있으면 새끼가 나온다는 거다. 그걸 보니 차마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영상을 올리면서 제목에 ‘욕 좀 먹겠습니다’라고 했다. 웃긴 건 새끼 낳고 그놈을 결국 다시 잡았다는 거다.
어미 멧돼지를 살려주는 모습(사진=유튜브 채널 ‘종본이’)
어미 멧돼지를 살려주는 모습(사진=유튜브 채널 ‘종본이’)
(Q) 멧돼지들의 민가 접근을 막을 방법
멧돼지를 산에서 살게 해 줄 방법은 국가 차원으로 산속에다 비가림 시설을 잘해놓고 소금을 군데군데 묻어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금이 녹으면 짠 흙이 되고 멧돼지들이 그 흙을 먹음으로써 염분을 섭취하게끔 하는 거다. 그러면 민가에 안 내려와 피해를 안 끼치게 된다고 생각한다.

(Q) 유튜브엔 어떤 콘텐츠를 채워나갈 건지
콘텐츠를 만들고 유지하려면 멧돼지가 있어야 하는데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제가 멧돼지를 많이 잡아서 별로 없다. 그래서 피해를 정말 많이 본 전라도 쪽 농가를 한두 군데 선정할 겁니다. 그곳에 내려가서 직접 놔드리고 관리하고 잡아보려고 한다. 영상 콘텐츠도 생산하고 농가에 도움도 드리며 보람도 느껴보려고 한다.

(Q) 꿈과 소망이 있다면
몇 년 안에 멧돼지가 전멸된다고 본다. 우리나라 멧돼지도 아주 좋은 품종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멧돼지의 종 보존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그마한 산을 구입해서 그 녀석들이 서식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고 다른 곳으로 유출되지 않게 완벽한 시설을 갖춰서 멧돼지의 우수한 종을 보존하고 육성하고 싶다.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sungho@seoul.co.kr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