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근자K] 그 많던 지하철역 공짜 마스크는 어디로 갔나

[통근자K] 그 많던 지하철역 공짜 마스크는 어디로 갔나

강주리 기자
강주리 기자
입력 2020-02-03 18:35
수정 2020-02-0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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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양심껏 1인 1매 호소했지만…30분 만에 마스크 1000장 동나”

시민의식 실종에 자조 섞인 비난 여론
손세정제 도난에 접착제·쇠사슬 등장
준비수량 150만장 닷새 만에 절반 소진
마스크 수급 어려움…모두 세금으로 운영

지난달 29일 무료 마스크 등장 이후
사흘 만에 자율 → 역무실 감시·배포 체제로
씁쓸한 ‘마스크 지킴이’ 업무 추가
안내문구에 중국어·영어 안내 없어
역무실 약도 없어 사람들 우왕좌왕
일부 이기심으로 모두가 불편해진 사회


[편집자주] ‘통근자K’는 세종시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매일 출퇴근하는 ‘통근자’ 강주리(K) 기자의 출퇴근길 공유하고 싶은 순간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만든 공간입니다. 통근하는 모든 이들의 안전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사라진 지하철역 마스크
사라진 지하철역 마스크 3일 서울 지하철 1호선 역내 비치된 손소독제. 마스크는 당초 이 자리에 자율적으로 가져가도록 비치됐으나 일부 이용객들이 1인당 1개씩인 마스크를 수어장 챙겨가면서 동이 나 위치가 역무실에서 받아가는 형태로 바뀌었다. 안내문에는 관광객을 위해 중국어나 영어 안내문, 역무실 약도 등이 어느 곳에도 표시돼 있지 않았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신문사와 가까운 서울 지하철 시청역에는 설 명절이 끝난 직후부터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바로 지하철역에 시민들에게 무료로 배포하는 마스크와 손 세정제(손 소독제)가 생긴 것이다. 시청역이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단골 명소인데다 출근길 마스크를 깜빡하고 나온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선제적 예방 조치라 생각했다. 반갑고 기쁜 마음이 드는 것도 잠시, 이 마스크들이 과연 몇 분을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한 주가 다시 돌아왔다. 마스크는 지하철역 현장에서 사라졌다.

서울시는 3일 브리핑을 열고 중국에서 집단 발병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코로나)인 ‘우한 폐렴’에 대비해 지하철역에 마련한 무료 마스크를 한 사람이 수어장을 가져가고 손 세정제가 통째로 사라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시민 의식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김정일 서울시 질병관리과장은 “지하철역에 아침에 마스크 1000매를 갖다 놓아봐야 30분 만에 동이 난다고 한다”면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가져가 쓸 수 있도록 쌓아두고 양심껏 1인 1매를 쓰기를 원했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모두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세금으로 마련된 손 세정제를 누군가가 통째로 들고 가는 일들이 생기면서 한 사람이 가져가지 못하도록 통 밑에 접착제를 바르고 쇠사슬을 엮어놓기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지하철역 역무실 내 비치된 마스크
지하철역 역무실 내 비치된 마스크 3일 서울 지하철역 1호선 시청역 역무실에 비치된 마스크와 손 소독제. 1인 1매씩 가져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역무실 내에 비치된 마스크
역무실 내에 비치된 마스크 서울 지하철역 1호선 시청역 역무실 내에 비치된 마스크.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실제 서울시와 서울시교통공사는 지난달 29일 기준 마스크 150만개를 확보했다. 그러나 불과 5일 만인 지난 2일 70만개를 사용했고 현재 재고는 80만개 정도가 남은 상황이다. 교통공사는 부족분을 그때 그때 보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한 사람이 여러 장을 챙겨갈 경우 재고는 금방 바닥날 것으로 추정된다. 교통공사가 관리하는 서울 277개 지하철역(1~8호선)에는 하루 평균 750만명이 이용한다. 9호선이 다니는 13개역에도 똑같이 마스크는 지급된다.

당초 교통공사는 지하철을 이용할 때 미처 마스크를 준비하지 못한 일부 승객들을 위해 하루에 2000매씩 마스크를 배포하려고 했으나 신종 코로나 국면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공급 확보에 어려움이 발생했고 배포 개수를 역당 하루 평균 500매로 줄였다고 전했다.

서울시는 시민 의식에 호소했으나 소용이 없어 결국 마스크를 한 장이 아닌 한 움큼씩 쥐어 가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감시하는 일을 역내 역무원에 맡기기로 했다. 가뜩이나 국가 전염병 비상 시국에 ‘마스크 지킴이’라는 씁쓸한 행정 업무가 추가된 셈이다.

마스크를 한 장이 아닌 수어장을 뭉텅이로 가져간 사람들은 한국 국민일 가능성이 높지만 지나가는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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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무료 마스크 비치 ‘욕심내지 마세요’
지하철 무료 마스크 비치 ‘욕심내지 마세요’ 29일 오후 시청역 1호선에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 확산 방지를 위해 마스크가 비치돼 있다. 서울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는 ‘우한 폐렴’ 확산 방지를 위해 모든 역사에 손 소독제와 일회용 마스크를 비치할 예정이다. 2020.1.29
연합뉴스
이는 역사마다 비치 방식에 차이가 있겠지만 최소한 시청역에는 마스크나 손 세정제가 비치된 곳에 중국어나 영어로 ‘1인 1매’라는 문구가 없다. 외국인들은 그저 무료로 배포하는 것인 줄 알고 넉넉하게 가져갔을 수도 있다. 역무실 위치에 대한 설명도, 약도도 없다.

이날 시청역에서 만난 한 20대로 추정되는 너댓명은 손 세정제를 이용한 뒤 마스크를 역무실에서 배포한다는 안내글을 보고 역무실을 찾았다.

문제는 역무실 위치에 대한 정보가 손 세정제가 놓인 현장에는 나와 있지 않아 “역무실이 대체 어디 있는 거야?”라며 헤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손 세정제가 놓인 곳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역무실의 위치를 알려주는 간단한 약도만 있었어도 찾기가 한결 수월했을 것이다. 행정 서비스에 대한 시민들의 만족도는 한 끗 차이다.

참고로 서울시 등이 배포하는 마스크는 미세먼지 방지용으로 널리 알려진 ‘KF94’ 마스크가 아닌 일반 마스크다. 기침이나 대화 중에 튈 수 있는 확진자의 침방울에만 직·간접적으로 노출되지 않아도 감염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역무원과 교통공사 관계자는 설명했다.
역무실에 비치된 마스크
역무실에 비치된 마스크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내 역무실에서 마스크를 구한 시민들의 모습.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KF94’가 아니어도 어떠랴. 매일 있는 출근길에 구하기 어려운 마스크 한 장이 아쉬운 시민들에게 공공기관의 마스크 무료 배포 정책은 시의적절해 보인다.

다만 실종된 시민의식이 못내 아쉽다. 온라인 등 일각에서는 이런 행태에 ‘뭘 기대했느냐’ ‘애초에 시민의식이란 건 없었다’ ‘민망하다’는 자조 섞인 비판까지 쏟아졌다.

마스크는 확진자에 의한 2차, 3차 감염을 막기 위해 우리 국민은 물론 사망자 수만 362명(이날 오후 4시 기준)로 마스크 수급에 비상이 걸린 중국의 보따리상들이 한국 마스크를 필사적으로 챙기면서 경찰이 매점매석에 의한 단속까지 나설 정도로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여기에 국가적 위기 상황을 대목 장사로 인식한 일부 몰지각한 업체들의 얄팍한 상술로 마스크 가격을 일제히 인상하면서 적정 가격에 마스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된 것도 공짜 마스크에 집착하게 된 이유로 보여진다. 주요 홈쇼핑에서는 이미 ‘마스크 일시 품절’ 딱지가 붙은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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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29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체크인 카운터 앞에 귀국길에 오른 관광객이 구매 뒤 자국으로 가져갈 방역 마스크들이 수화물 카트에 쌓여 있다.  이날 오전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국내 환자가 추가로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내 확진환자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4명이다. 2020.1.29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29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체크인 카운터 앞에 귀국길에 오른 관광객이 구매 뒤 자국으로 가져갈 방역 마스크들이 수화물 카트에 쌓여 있다.
이날 오전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국내 환자가 추가로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내 확진환자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4명이다. 2020.1.29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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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서 중국인 여행객들이 마스크 박스가 실린 카트를 밀고 탑승수속대로 향하고 있다.  2020.2.3  연합뉴스
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서 중국인 여행객들이 마스크 박스가 실린 카트를 밀고 탑승수속대로 향하고 있다. 2020.2.3
연합뉴스
다소 잠잠해지나 했던 신종코로나 확진자가 지난달 30일부터 나흘 만에 15명으로 급증하면서 출퇴근길 분위기가 하루가 다르게 살벌해지고 있다. 확진자가 지하철, KTX를 타고 이동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역내에서 마스크를 안 쓰고 있는 게 머쓱해질 정도다.

매일 아침 저녁 기차와 지하철, 버스를 모두 이용해 출퇴근하는 수많은 통근자들은 마스크 하나가 아쉽다. 이날도 어리바리하게 현관 앞에 마스크를 두고 나와 다급히 오송역 편의점을 찾았던 나. 마스크는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다 팔려 살 수가 없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극히 일부가 자신의 이기심에 국민의 혈세로 비치된 지하철역 무료 마스크를 수어장 가져가 동이 났다. 그 탓에 정말 마스크가 필요했던 상당수 시민들은 좀더 불편하고 다소 귀찮게 역무실이나 역내 안내센터를 찾아 역무원의 감시 속에 마스크를 챙겨야 하는 수고로움을 하게 됐다.
마스크 안내문이 붙여진 위치에서 역무실까지 위치
마스크 안내문이 붙여진 위치에서 역무실까지 위치 3일 서울 지하철역 1호선 시청역 내 손소독제가 비치된 장소에서 마스크가 비치돼 있는 역무실의 모습이 보인다. 손소독제가 비치된 이곳에 당초 마스크가 놓여 있었으나 ‘1인 1매’가 아닌 수어장을 한 번에 가져가는 이용객들로 인해 수급에 어려움을 겪자 역무실 내로 위치를 바꿨다. 안내글에는 역무실의 위치를 보여주는 약도가 없어 일부 시민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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