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서 성폭력 고발편지 썼더니 가해자 손에 들어가”

“군대서 성폭력 고발편지 썼더니 가해자 손에 들어가”

강경민 기자
입력 2019-08-05 09:19
수정 2019-08-0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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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10인 사례조사 논문…“피해자 보호 부실, 전역후까지 트라우마”

“선임이 몸을 계속 더듬으니까 제가 ‘이거 성희롱이다, 하지 마라’ 말했어요. 그러니까 선임이 완전히 토라진 거예요. 그리고 몇 시간 뒤엔가 제 위·아래 기수까지 포함해 집합을 시켰어요. ‘언제부터 일병 이병이 감정표현을 했냐’면서 ‘선임들이 예뻐해 주니까 네가 뭐라도 된 거 같냐’는 식으로 말하고…”

“마음의 편지라고 하죠, ‘○○병장이 저를 괴롭혔습니다’라고 고발한 편지를 가해자 본인한테 보내요.”

“누구한테 알리거나 하면 가해자가 혼나는 게 아니라 피해자한테 ‘왜 네가 말을 했냐’ 하는 (군대) 특성 아시잖아요. 그래서 말도 못 하고….”

4일 한양대 상담심리대학원 서동광씨의 석사학위 논문 ‘군대 내 성폭력 피해 병사들의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에 따르면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들은 피해 이후에도 부대 측으로부터 적절한 보호조치를 전혀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에는 관리·보호 사각지대에 놓인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담겼다. 전역 후 5년이 채 지나지 않은 23∼29세 남성 10명이 피해사실을 증언했다.

피해자 10명 모두 선임이나 간부를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했으며, 그중 9명은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못했다. 고발해도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피해사실만 부대 전체에 퍼져 군 생활이 어려워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일명 ‘마음의 편지’로 불리는 무기명 고발제도나 전화 고발제도도 무용지물이었다.

피해자 A씨는 “고발용 전화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며 “그거(전화 고발) 하면 남은 군 생활을 ‘병풍’처럼 보내야 한다는 걸 다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발 사실이 가해자에게 그대로 전달되거나, 고발 이후 선임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 B씨는 “상담을 신청하는 군인들이 가장 불안에 떠는 게 상담 사실을 다른 부대원들이 알지 않을까 하는 것”이라며 문제가 커질까 봐 일을 숨기고 쉬쉬하는 군 문화를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증언에 참여한 10명 중 유일하게 피해 사실을 고발한 피해자 C씨는 고발 이후에도 가해자와 계속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근무하는 등 적절한 보호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직된 위계질서 탓에 선임이나 간부의 성폭력을 고발하기 어렵고, 용기를 내 고발하더라도 부대에서 가해자 편을 드는 등 피해자 보호에 소홀했다고 피해자들은 입을 모았다.

피해자들은 “5년이 지난 지금도 약간 트라우마처럼 문득 생각이 날 때가 있고, 갑자기 화도 난다”, “가만히 있을 때 눈물이 나기도 하고, 그 생각을 하다 보면 잠이 안 오기도 한다”며 여전한 괴로움을 호소했다.

연구자 서동광씨는 “군대 내 성폭력은 나이·지위·계급 등 권력의 위계에 의존한 가학행위에 가깝다”며 “친밀감이나 장난으로 미화하는 가해자 중심 논리는 군에 있는 위계의 엄격함 속에 더욱 뿌리 깊게 박힌다”고 분석했다.

서씨는 “군대 내에서는 신고 이후에 자신에게 가해질지 모르는 2차 공격에 대한 두려움도 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씨는 군대 내 성폭력이 발생했을 경우 현장에 있었거나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주변인들이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피해자들은 낮은 계급, 고발하면 비난받을 것 같은 분위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신고하기 어렵다”며 신고 의무화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또 피해자 중 절반 이상이 다른 병사들과 함께 지내는 생활관에서 피해를 봤다고 진술한 만큼, 타인에 의한 신고가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서씨는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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