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 軍조직 ‘편의대’ 실체 밝혀지면…” 前 미군 정보요원 김용장씨 국회 증언
시민 폭도로 몰아 강경 진압 빌미 조장전두환의 보안사 고도의 공작 벌인 것
39년 만에 입 뗀 전직 미군 정보요원
김용장(오른쪽) 전 미국 정보부대 정보관과 허장환(왼쪽) 전 보안사 특명부장이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5·18은 계획된 시나리오였다’라는 이름으로 특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김씨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씨가 계엄군의 발포(5월 21일) 직전 광주를 방문해 시민군에 대한 ‘사살 명령’을 내렸다고 증언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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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을 닷새 앞둔 13일 전직 미군 정보요원이었던 김용장(74)씨가 국회의원회관 기자회견장에서 무겁게 입을 뗐다. 그는 5·18 당시 미 육군 501여단에서 근무했던 유일한 한국인 정보관이었다. 은퇴 뒤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에서 살던 그는 5·18기념재단 관계자 등의 설득으로 입국해 자신의 목격담을 털어놨다. “5·18 때 북한 특수군 침투설은 신군부가 지어낸 얘기이며 계엄군 측이 폭동을 부추기거나 자행해 유혈 진압 명분을 쌓았다”는 것이 증언의 핵심이다. 이를 근거로 당시 군부의 1인자였던 전두환씨가 직접 시민에 대한 사살 명령을 했다고도 증언했다.
김씨는 먼저 “북한군 600명이 광주로 왔다는 주장은 전두환이 만든 허위 날조”라고 말했다. 두 가지 근거를 들었다. ▲북한 특수군 수백명이 광주로 내려왔다면 당시 미군의 정보망이 완전히 뚫렸다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600명이 침투하려면 잠수정 약 30척이 필요한데 당시 북한은 그 정도 잠수정을 보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두 대의 미국 군사첩보위성이 북한과 광주를 집중 정찰하고 있었다”며 “북한군 600명이 미국의 감시망을 피해 들어오는 건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광주에서 활동한 사복 군인 조직인 ‘편의대’에 대해서도 “분명히 있었고 이들의 실체가 밝혀진다면 광주의 모든 의문이 풀릴 것”이라고 증언했다. 편의대의 존재는 그동안 광주 시민들의 일부 증언으로만 알려져 왔었다. 김씨는 자신이 직접 광주에 온 편의대 대원들을 봤다면서 “20~30대로 짧은 머리에 일부는 가발을 썼다.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렸고, 일부는 거지처럼 넝마를 걸친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전두환의 보안사령부가 보낸 이 ‘남한 특수군’이 선봉에 서서 방화, 총격, 장갑차 탈취 등 시민들의 극렬 행위를 유도하거나 직접 벌였고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 시민을 다 죽이려 한다’는 등 유언비어도 유포했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그는 “시민을 폭도로 몰아 강경 진압의 빌미를 만들기 위해 보안사령부가 고도의 공작을 벌인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전두환이 철저한 시나리오 속에 5·18을 폭동처럼 몰고 간 뒤 직접 광주를 방문해 ‘사살 명령’을 내렸다는 주장도 재차 했다. 그는 “발포 명령과 사살 명령은 완전히 다르다. 발포는 상대방이 총격을 가했을 때 방어 차원에서 하는 것”이라면서 “(전씨가) 헬기를 타고 왔기 때문에 비행계획서를 파기하지 않았다면 자료가 남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제가 그 당시에 쓴 보고서 40건 가운데 5건이 백악관으로 보내졌고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이 3건을 직접 읽었다”고 주장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2019-05-14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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