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세, 기다리고 기다렸지만…끝내 못 들은 일본의 사과

94세, 기다리고 기다렸지만…끝내 못 들은 일본의 사과

김정화 기자
입력 2019-03-03 23:44
수정 2019-03-10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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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곽예남 할머니 별세

60여년 中생활에도 조선 국적 지켜와
2004년 국적 회복했지만 폐암 투병
위안부 피해 생존자 22명밖에 안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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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곽예남 할머니 별세   뉴스1
위안부 피해자 곽예남 할머니 별세
뉴스1
광주·전남에 유일하게 생존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곽예남 할머니가 3·1절 100주년 하루 뒤 세상을 떠났다. 94세.

3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에 따르면 곽 할머니는 전날 오전 9시 별세했다. 지난 1월 28일 김복동 할머니와 이모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33일 만이다.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22명으로 줄었다. 곽 할머니의 빈소는 전주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장지는 천안 망향의동산에 마련된다.

곽 할머니는 1925년 전남 담양에서 2남 4녀 중 3녀로 태어났다. 만 19세 때인 1944년 봄, 동네 여성 5명과 뒷산에서 나물을 캐고 있다가 일본 순사에게 폭력적으로 연행됐다. 중국으로 끌려간 곽 할머니는 1년 반 동안 일본군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 위안부 생활을 하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하루에 세 차례씩 방에 있는지 검사를 받아야 해 도망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일본의 패전으로 풀려난 곽 할머니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구걸하는 삶을 살다가 중국 안후이성 숙주에 정착했다. 60여년을 중국에서 살면서도 조선 국적을 바꾸지 않는 등 항상 고향을 그리워했다. 이후 한 방송사의 공익예능프로그램과 한국정신대연구소의 도움으로 2004년 국적을 회복하고 가족과 극적으로 상봉했다.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곽 할머니는 2015년 12월 폐암 4기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병환이 더 진전되지 않아 3년이 넘는 선물 같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봉침 목사’로 알려진 한모 목사가 곽 할머니의 수양딸이 된 것을 두고 시민단체가 “곽 할머니를 이용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석연찮은 일에 휘말리기도 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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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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