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 할머니 별세]“60대에 시작한 투쟁…삶 자체가 위안부 고발의 역사”

[김복동 할머니 별세]“60대에 시작한 투쟁…삶 자체가 위안부 고발의 역사”

김정화 기자
입력 2019-01-29 13:43
수정 2019-01-29 14:12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윤미향 이사장, “마지막 순간에도 ‘위안부 해결’ 유언 남겨”
김 할머니, 동일본 대지진 땐 일본인 피해자 도와
이미지 확대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별세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별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93) 할머니가 28일 오후 10시 41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3일 제1355차 정기수요집회에 참가해 발언하는 김복동 할머니 모습. 2019.1.29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김복동 할머니는 버팀목이자 바위 같은 분이셨습니다. 가시는 길까지 위안부 문제 해결을 부르짖으셨고 전 세계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저희에게 ‘끝까지 해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 없는 현장이 어떤 곳일지 아직 상상도 안 가요.”(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암 투병 끝에 28일 눈을 감은 김복동(94)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면서 인권 운동가였다. 그의 삶은 위안부 피해자의 투쟁사 그 자체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일본 정부를 향해 진심 어린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했고, 돈 한 푼도 자신보다 또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 쓰이길 바랐다.

2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차려진 장례식장에서 윤 이사장은 “김 할머니는 기력이 쇠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마지막 순간에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힘 써달라’고 하며 떠나셨다”면서 “평화로운 세상에서 할머니가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실 수 있도록 남은 우리들이 뜻을 이어받겠다”고 밝혔다.

김 할머니의 삶은 굴곡의 연속이었지만, 의지로 딛고 일어섰다. 할머니는 1925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열다섯 되던 해인 1940년 위안부로 연행됐고,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일본군의 침략 경로를 따라 끌려다니며 성노예 피해를 겪었다. 광복 후인 1948년 8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결혼과 출산도 포기하고 1992년 3월 위안부 피해자임을 공개하며 인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할머니는 이듬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엔(UN)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하면서 국제사회에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2000년에는 일본군성노예전법여성국제법정에 원고로 참여해 피해 실상을 문서로 증언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른 재난 피해자들에게도 공감과 연대의 몸짓을 보였다.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 대지진 당시 피해자들을 돕는 모금활동에 참여했고, 2012년 3월에는 정의기억연대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나비기금’을 설립했다.
이미지 확대
마련된 김복동 할머니 빈소
마련된 김복동 할머니 빈소 29일 서울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2019.1.29 연합뉴스
2012년부터 2016년까지는 유엔인권이사회와 미국, 영국, 독일, 노르웨이, 일본 등 각국으로 해외 캠페인을 다니며 전시 성폭력 반대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2015년 7월 미국 워싱턴 방문 당시 “죽을래야 억울해서 죽지 못한다”면서 “아베 일본 총리는 법적으로 사죄하고 우리 명예를 회복시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5년 5월 국경없는기자회는 김 할머니는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선정했다.

전날 할머니의 임종을 곁에서 지킨 윤 이사장은 이날 빈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보통 사람들이 은퇴하는 나이인 60대에 할머니는 투쟁을 시작하고 94살이 되도록 치열하게 싸워 왔다”면서 “말년에 대장암, 복막암 등을 앓으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와중에도 일본 정부에 항의하고 지난 2015년 한일 합의를 맺은 한국 정부에도 책임을 다하라고 외쳤다”고 말했다. 이어 “할머니는 당신 통장에는 마지막에 160만원만 남겨두면서 총 2억원이 넘는 돈을 포항 지진 피해자, 콩고와 우간다 성폭력 피해자,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김명희 서울시의원, 강북구 대한병원교차로 ‘좌회전 신호’ 체계 변경 예정지 현장답사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김명희 의원(더불어민주당, 강북1)은 지난 7일 ‘강북구 대한병원교차로 좌회전 신호 체계 변경 예정지’를 직접 찾아 현장 상황을 점검하고, 공사 추진계획과 교통안전 대책 등을 확인했다. 그간 도봉로 대한병원교차로에서 광산사거리 방면 노해로로 진입하려면 덕릉로나 강북구청사거리 방향으로 약 500m가량 돌아가야만 했다. 이로 인해 이동 거리와 소요 시간이 늘어나며 지역 주민들의 교통 불편이 계속해서 이어졌고, 도봉로에서 노해로 방향으로의 안전하고 원활한 통행을 담보할 좌회전 신호 신설 요구가 꾸준히 이어져 왔다. 김 의원은 주민 숙원이었던 좌회전 신호 신설을 실현하기 위해 지난 8월 강북구 수유3동 3920가구의 뜻을 모은 ‘대한병원교차로 좌회전 허용 주민 요청서’를 서울시에 직접 전달했다. 이후 서울시 및 서울경찰청 실무 담당자들과 지속적인 협의를 추진해 온 결과, 지난 9월 21일 서울경찰청 교통안전심의에서 대한병원교차로 좌회전 신호 신설 안건이 최종적으로 가결됐다. 서울시는 교통안전심의 통과에 따라 10월 중순까지 실시설계를 완료하고, 북부도로사업소 및 강북구청 등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10월 중 곧바로 공사에 착수해 올해 안에
thumbnail - 김명희 서울시의원, 강북구 대한병원교차로 ‘좌회전 신호’ 체계 변경 예정지 현장답사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