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때문에 노숙인들 자활 포기…서울역에 음주제한구역 지정을”

“술 때문에 노숙인들 자활 포기…서울역에 음주제한구역 지정을”

김헌주 기자
김헌주 기자
입력 2018-06-11 23:38
수정 2018-06-12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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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국 서울역파출소 경위

200~300명과 매일 아침 인사
치유해 가는 데 도움 되길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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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국 서울역파출소 경위
한진국 서울역파출소 경위
“또 술 마셨어? 어떻게 맨날 술이야. 네가 (병원) 간다고 했다?”

11일 오전 서울역파출소 소속 한진국(57) 경위가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인들과 아침 인사를 하던 중 술 냄새가 진동하는 40대 노숙인 우모씨를 발견하자 대뜸 “술 좀 그만 마셔라”라고 호통을 쳤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병원에 가서 제발 치료 좀 받자”고 했다. 우씨는 중증 알코올 중독자로 술만 마시면 다른 노숙인들과 시비가 붙어 한 경위가 특별히 신경 쓰는 노숙인 중 한 명이다. 한 경위는 “알코올 중독 증상이 심한 노숙인에게 병원 치료를 권하면 ‘경찰관이 왜 이러느냐’면서 고집을 피우다가도 막상 병원을 다녀오면 ‘술 안 마시겠다’고 웃으면서 인사한다”면서 “술만 끊어도 사람이 확 달라진다”고 말했다.

한 경위는 서울역 노숙인들을 담당하는 전담 경찰관이다. 적게는 200여명에서 많게는 300여명의 노숙인들을 혼자 담당한다. 2015년 1월 전임자가 승진과 동시에 지방 발령이 나면서 빈자리가 됐는데 아무도 자원하지 않아 결국 한 경위가 맡게 됐다고 한다. 한 경위는 “나름 경찰로서 엄청 고생했는데 퇴임 얼마 앞둔 나에게 이런 일을 맡기겠다고 하니 ‘왜 내가 그 일을 해야 하나’란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라면서 “그런데 막상 해보니 노숙인들도 똑같은 사람이더라. 선입견 때문에 주저했던 것이 부끄러웠다”고 돌이켰다.

그의 업무는 오전 6시부터 오후 9~10시까지 서울역 광장을 순찰하며 노숙인들을 살피는 일이다. 특히 오전 7시부터 노숙인들과의 아침 인사는 한 경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업무 중 하나다. 그는 “밤새 노숙인들끼리 싸워 다친 사람은 없는지, 새로 들어온 노숙인은 없는지 일일이 얼굴을 보면서 인사를 한다”면서 “노숙인들한테 치유가 될 수 있을까 싶어 일부러 하게 됐다”고 말했다.

3년 넘게 수많은 노숙인들이 한 경위 곁을 지나갔지만 아쉽게도 자활에 성공한 노숙인은 손에 꼽을 정도다. 한 경위는 “대학교를 멀쩡히 졸업한 친구가 여수에서 노숙 3년을 하고 서울역에 와서 다시 3년을 했다. 그래도 그 친구는 자활 의지가 강해 다행히 이곳을 떠났지만 대부분은 ‘술’ 때문에 주저앉는다”고 말했다.

한 경위가 서울역 광장을 ‘음주제한구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공공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면 과태료를 부과하면서 왜 술은 규제를 안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서울시 조례로라도 서울역 광장에서는 술을 못 마시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지자체, 사회복지시설에서 노숙인 자활을 돕고 있지만 노숙인들이 답답함을 호소하고 다시 서울역을 찾는 이유를 살펴야 한다”면서 “오히려 시설에서 술을 조금 허용하더라도 광장에서는 못 마시게 하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한 경위는 정년까지 남은 3년 6개월의 시간도 노숙인들과 함께 보낸다는 계획이다. 그는 “노숙인을 돌보는 것은 이제 내 의무가 됐다”고 웃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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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2018-06-1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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