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의지 vs 서울 포기”…헌법 수도조항 논란 재점화

“지방분권 의지 vs 서울 포기”…헌법 수도조항 논란 재점화

신성은 기자
입력 2018-03-21 14:42
수정 2018-03-2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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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헌재 “개헌 없는 수도이전은 위헌”…관습헌법 논란…정부, 조항 신설

청와대가 21일 공개한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에서 ‘수도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 정한다’는 조항이 신설된 점을 놓고 법조계와 법학계에서는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수도를 법률로 정해 정책적 유연성을 높이고 다양한 개념의 중심지를 규정할 수 있도록 외연을 넓히는 한편 지방분권을 실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반영했다는 긍정적 평가와 ‘수도 서울’을 헌법에 명시하지 않은 것은 서울을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다는 뜻이어서 소모적 국론분열을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론이 맞서고 있다.

청와대가 이날 개헌안의 ‘헌법 총강’에 수도조항을 넣기로 한 것은 2004년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이전 위헌’ 결정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헌재는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4년 10월 헌재는 행정수도를 충청권으로 이전하기 위한 근거법인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신행정수도 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개헌 없이 수도를 옮기겠다는 뜻이어서 국민투표권을 침해한다는 취지였다.

당시 헌재가 내놓은 핵심 법리는 헌법에 명문화되지 않은 이른바 관습헌법(불문헌법)이었다.

서울이 수도라는 점은 헌법에 명시돼 있지 않지만, 조선왕조 이래 600여 년간 오랜 관습에 의해 형성된 규범, 즉 관습헌법이며 이를 개헌으로 바꾸지 않은 채 수도를 옮기려는 것은 위헌적이라는 판단이었다.

특별법에 나온 ‘행정수도’는 주요 헌법기관과 중앙행정기관을 모두 옮기는 곳으로 정의돼 있어 사실상 ‘천도(遷都)’와 다름없다는 해석을 전제로 삼았다.

당시 헌재 결정을 두고 한동안 논란이 있었다. 관습헌법의 효력을 인정해야 할지, 관습헌법만을 근거로 위헌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 관습헌법을 인정한다면 성문헌법과 어떤 관계를 지니는지 등이 주된 쟁점이었다.

정부의 이번 개헌안은 이 같은 논란을 차단하면서 수도에 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헌법 조항을 바꾼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수도는 헌법이 아니라 법률로 정할 수 있다는 점을 헌법에 명시해 ‘관습헌법 위배 논란’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 청와대는 “국가기능의 분산이나 정부부처 등의 재배치 등의 필요가 있고, 나아가 수도 이전의 필요성도 대두될 수 있으므로, 이번 개정을 통해 수도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 정하도록 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헌법보다 개정이 쉬운 법률로 수도에 관한 사항을 정한다는 대목에서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법제처장을 지낸 이석연 변호사는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수도가 서울이라는 것은 관습헌법상 명백하며 헌재 결정으로 인정됐던 것”이라며 “이번 개헌안은 수도 서울을 포기하겠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변호사는 “수도의 기능을 분산하는 것은 법률로 정할 수 있겠지만, 이는 수도가 서울이라는 점을 전제로 해야 하는 것”이라며 “국회 다수당이 정하는 대로 법을 고쳐 수도를 바꾸면 국론이 분열하고 엄청난 국력 낭비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4년 당시 신행정수도 이전 사안에 헌법적 문제를 제기한 헌법소원 청구인단 간사를 맡아 변론한 바 있다.

반면 헌법학자인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김종철 교수는 “미래에는 행정·교육·문화·해양수도 등 다양한 개념의 수도 내지 중심지를 둘 수 있고 그런 정책적 유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법률로 수도를 정하려는 것”이라고 반론을 폈다.

김 교수는 “개헌안에 ‘수도를 법률로 정한다’고 하지 않고 ‘수도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 정한다’고 쓴 것은 그런 유연성을 고려한 것”이라며 “수도 과밀화를 해소하고 지방분권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도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수도조항을 놓고 국가 정체성이나 통일 한국의 수도를 정하는 문제 등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뚜렷한 차이가 드러났다.

이 변호사는 “개헌안에는 ‘수도는 서울, 국가는 애국가, 국기는 태극기, 국어는 한글’ 등 국가 정체성 조항이 명시돼야 하고, 이를 쉽게 바꾸지 못하는 가치로 둬야 국민 여론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또 “1972년부터 북한은 헌법에 수도를 평양이라고 명시했다. 통일 후 수도를 정할 때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수도 서울을 헌법에 못 박을 필요가 있는 것”이라며 “수도 서울이 빠진 수도조항은 노무현 정부가 이루지 못한 행정수도 이전을 다시 성사시키겠다는 뜻으로밖에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 교수는 “통일이 된다면 행정수도 등을 정할 때 유연성이 필요할 수 있다”며 “그런 점에서 개헌안은 통일을 대비한다는 취지도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번 개헌안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영토조항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 있다”며 “영토조항이 아닌 수도조항은 국가 정체성을 둘러싸고 논란 소지가 있을 사안이 아니며 논란이 많았던 관습헌법의 제약을 해소했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수도에 관한 문제는 충분한 여론 수렴과 국민적 합의를 거쳐 정해져야 한다는 신중론·절충론도 나온다.

한국공법학회 회장을 지낸 성균관대 로스쿨 정재황 교수는 “개헌안이 지방분권 의지를 천명하고 여러 개념의 수도를 선정하는 유연성을 추구한다는 점을 평가한다”면서도 “수도 관련 사항을 법률로 정할지는 중요한 사안이므로 국민적 합의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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