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간판보다 직업”…‘공딩’ 택하는 고딩

“대학 간판보다 직업”…‘공딩’ 택하는 고딩

오경진 기자
오경진 기자
입력 2018-01-16 21:14
수정 2018-01-17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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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 직업 공무원 되고 싶어” 공직박람회 설문 46%가 고교생

“처음에는 대학에 가려고 했어요. ‘캠퍼스 커플’ 낭만도 즐길 수 있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진지하게 고민해봤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안정적인 직장을 갖는 게 더 낫지 않겠나 하고요. 아무래도 제가 여자다 보니, 임신·출산에 대한 배려가 공무원이 일반 회사원보다 낫다는 점도 고민에 포함됐습니다.”
지난 12일 서울 동작구 서울공업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습실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올해 고 3이 되는 학생들은 방학에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 자습실을 찾는다.
지난 12일 서울 동작구 서울공업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습실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올해 고 3이 되는 학생들은 방학에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 자습실을 찾는다.
올해 고3이 된 안시현(18)양은 대학을 졸업해도 좋은 직업을 구하기 힘든 현실에 일찌감치 ‘공딩’이 되기로 결심했다. 공딩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을 뜻하는 신조어다. 서울신문이 지난달 6~7일 열린 공직박람회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조사에 응한 219명 중 101명(46.1%)도 고등학생이었다.

지난 12일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특성화고 서울공업고등학교를 찾았다. 서울공고는 지난해 서울시 9급 공무원만 25명을 배출했다. 학교 정문에는 ‘2017년 공무원 25명 합격(전국 1위)’이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기계직렬에 합격해 다음달부터 시작되는 교육연수를 기다리고 있는 손석희(19)군은 “공직에 진출한 선배들 특강을 듣고 고 1 때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다”며 “누구나 살면서 직업적 안정성을 보장받아야 하지만 지금 그게 가능한 직업이 공무원밖에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새해 본격적으로 ‘공시’ 준비에 들어간 토목건축과 정형규(18)군은 “어렸을 때부터 건축·토목 관련 일을 하고 싶었는데, 이와 관련해 안정적인 직업은 공무원뿐이었다”고 털어놨다. 공무원 장점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웬만해선 잘릴 일이 없을 것 같아서요”라고 멋쩍게 웃었다.

특성화고·전문대 졸업(예정)자를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지역인재 9급 채용은 고등학생이 비교적 손쉽게 공무원에 임용될 수 있는 전형이다. 지난해 170명 선발에 1065명이 몰려 경쟁률 6.3대1을 기록했다. 일부 전문대학 졸업자도 있지만 대다수(87%)는 특성화고 졸업(예정)자였다. 고등학생에게 따로 특혜를 주지 않는 국가공무원 9급 공개채용에서도 지난해 20대 미만 합격자가 3명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실제 교육현장에서도 느껴진다. 서울의 한 특성화고 교사는 “특성화고에서도 몇 년 전에는 대학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이 80% 가까이 됐었다”며 “최근 3년 전부터 학생들 태도가 달라졌는데, 이제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고 싶다는 학생이 80%가 넘었다”고 말했다. 몇 년 사이에 상황이 완전히 바뀐 셈이다. 노량진 학원 관계자도 “교실 곳곳에서 고등학생들이 눈에 띈다”고 전했다.

다만 학생들이 공무원 시험에 ‘올인’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교사들도 고민이 깊다. 최창수 서울공고 취업특성화부장은 “매년 합격 실적이 좋지만 공무원 준비반 인원을 늘리진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공무원 선발 인원은 정해져 있는데, 준비하는 학생만 늘리면 그만큼 떨어지는 학생도 늘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

수차례 낙방에도 수험가를 떠나지 못하는 ‘공시낭인’, 시험공부에만 열중하느라 사회성을 잃은 사람을 가리키는 ‘고시오패스’ 등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고등학생들까지 여기에 가세해 문제가 심화될 거란 우려도 나온다. 특히 10~20대는 정체성·대인관계를 확립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에 따르면 인간의 심리사회적 발달단계는 총 8개로 나뉘는데, 본격적으로 노동과 생산성을 향상하는 시기는 30~40대다. 너무 이른 나이에 노동·생산에 뛰어들면 스트레스 질환이 생길 수 있으며 이는 나중에 또 다른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최소한의 경제적 성취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이런 현상을 부추겼다”며 “이 현상을 강제로 막긴 어렵고, 최소한 이들에게 정신적 간호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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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2018-01-17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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