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억원대 가상화폐’ 사기업체 적발…가수 박정운도 가담

‘2천억원대 가상화폐’ 사기업체 적발…가수 박정운도 가담

김태이 기자
입력 2017-12-20 15:40
수정 2017-12-20 15:4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검찰 마이닝맥스 계열사 임직원·최상위 투자자 등 21명 기소

2천억원대 가상화폐 다단계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채굴기 운영을 대행한 미국업체 임직원과 최상위 투자자들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겼다.

이들 중에는 1990년대 초반 ‘오늘 같은 밤이면’ 등의 노래로 큰 인기를 끈 가수 박정운(55)씨도 포함됐다.

인천지검 외사부(최호영 부장검사)는 사기 및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채굴기 운영 대행 미국업체 ‘마이닝맥스’의 계열사 임직원 7명과 최상위 투자자 11명을 구속기소 했다고 20일 밝혔다.

검찰은 마이닝맥스의 홍보 담당 계열사 대표이사인 박씨 등 3명도 업무상횡령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달아난 최상위 투자자 4명을 지명수배했다.

이들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0월까지 가상화폐 ‘이더리움’을 생성할 수 있는 채굴기에 투자하면 많은 수익금을 가상화폐로 돌려주겠다고 속여 투자자 1만8천여 명으로부터 2천700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더리움은 비트코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시가총액이 큰 가상화폐다.

가상화폐를 새로 얻으려면 수학 문제 등 어려운 수식을 풀어야 한다. 이더리움 채굴기는 이 암호를 풀어주는 고성능 컴퓨터 기계다.

마이닝맥스는 피라미드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한 뒤 하위 투자자를 유치한 상위 투자자에게 추천수당과 채굴수당 등을 지급했다.

투자자들은 구매한 채굴기 수에 따라 ‘일반투자자’부터 ‘1∼5스타’, ‘명예졸업자’까지 총 7개 등급으로 나눠 불렸다. 이번에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4스타’와 ‘5스타’로 다단계 피라미드의 꼭짓점에 있던 최상위급 투자자들이다.

최상위 투자자들은 1년간 1인당 최소 1억원에서 최대 40억원의 수당을 받아 챙겼다. 수당과 별도로 실적 우수자는 벤츠 등 외제차, 고급 시계, 순금 목걸이 등도 받았다.

마이닝맥스는 피해자들로부터 받은 2천700억원 중 750억원만 채굴기를 사는 데 쓰고 나머지 돈은 계열사 설립자금이나 투자자를 끌어온 최상위 투자자들에게 수당으로 줬다. 1천억원가량은 마이닝맥스 임원진이 해외에서 보유한 것으로 검찰은 추정했다.

그러나 투자자 수만큼 제대로 가상화폐를 채굴할 수 없게 되면서 수익금 지급이 지연됐고, 급기야 하위 투자자의 투자금으로 상위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주며 돌려막기를 하다가 회장과 부회장은 해외로 도피했다.

마이닝맥스는 자금관리회사 3개, 전산관리회사 3개, 고객관리회사 2개, 채굴기 설치·운영회사 2개, 홍보대행 회사 1개 등 모두 11개의 계열사를 보유했다.

이들 계열사 가운데 전산관리회사들은 실제로 가상화폐가 채굴되는 것처럼 조작할 수 있는 전산 프로그램을 개발해 피해 투자자들을 속였다.

가수 박씨는 홍보대행 회사의 대표를 맡아 올해 8∼10월 8차례 회사 자금 4억5천여만원을 빼돌려 생활비 등으로 쓴 혐의 등을 받았다.

박씨는 검찰 조사에서 “마이닝맥스가 전산을 조작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고 불법 다단계 사기인 줄도 몰랐다”며 “행사장에서 후배 가수들을 불러 흥을 돋우는 역할만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닝맥스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중국 등 전 세계 54개국에서 유사한 수법으로 투자자들을 모집했다. 올해 6월 미국 하와이와 11월 라스베이거스 등지에서 대규모 워크숍을 열기도 했다.

검찰은 나라별 피해자 수가 한국 1만4천여명, 미국 2천600여명, 중국 600여명, 일본 등 700여명으로 각각 추산했다.

한국인 피해자 상당수는 가상화폐로 안정적인 수익을 얻으려고 투자했다가 사기를 당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30대의 한 남성은 결혼 자금으로 모은 2천500만원으로 채굴기 10대를 샀다가 아무런 수익도 거두지 못했고, 60대 전직 교사는 30년간 교직 생활을 하고 받은 퇴직금 중 5천만원을 투자했다가 모두 날리기도 했다.

채굴기 103대를 산 한 50대 여성은 “교사로 일하며 모은 월급과 퇴직금 등 4억원을 투자했다”며 “피해금을 되찾을 수 있기만을 바란다”고 말했다.

40대인 또 다른 피해 여성은 “돈이 많아서 투자한 게 아니다”며 “3개월 뒤에 원금을 찾을 수 있다는 말만 믿고 무리하게 채굴기를 샀다”고 울먹였다.

검찰은 미국과 캐나다 등지로 도주한 미국 국적의 한국인 회장 A(55)씨 등 마이닝맥스 임원과 계열사 사장 등 7명에 대해 체포 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을 통해 적색수배를 내렸다. 또 회장 수행비서 등 4명을 조사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주범들이 해외에서 현재까지도 계속 범행을 하고 있어 피해 규모가 늘고 있다”며 “도주자들을 계속 쫓는 한편 범행 가담자들을 추가로 수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상화폐는 가격이 급등락을 반복해 수익 구조가 불안정한데도 투자 과열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 투자자들이 피해를 복구할 수 있도록 법령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수사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등 협조하겠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