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충·우울증 환자·비정규직’ 20대 A씨…사회부적응에 온라인 공간으로 ‘도피’
경남 창원에 거주하는 20대 후반 A씨는 이번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 투표를 하지 않았다.연애나 결혼, 정규직 취업은 물론 청년이 가질 수 있는 희망과 기대는 모두 포기했다. 정치에 기대를 거는 것은 애초에 그의 사전엔 없었다.
온라인상에서 그를 규정하는 단어는 무척 많다.
‘일베충, 여성혐오자, 지역차별주의자, 우울증 환자, 비정규직 그리고 N포 세대’.
적어도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동안 A씨의 정체성은 그렇다. 한 사람이 서로 다른 두 인격을 가진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A씨는 전혀 다른 인격체이다.
N포 세대란 구직난 등 사회경제적 요인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은 물론 취업, 내 집 마련, 인간관계 등 삶의 모든 가치를 포기한 20·30대를 뜻한다.
A씨의 하루는 극우 인터넷 사이트로 알려진 곳을 훑어보거나 여기에 글을 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오전 6시께 눈을 뜨자마자 이곳에 ‘오늘도 밑바닥 인생 문을 열었다’ 같은 자기비하 글을 올린다.
직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창원의 한 제조업 하청업체 직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2년 계약직. 나이 앞자리가 2에서 3으로 바뀌면 A씨는 다시 구직자 신분이 된다.
그런 A씨의 사소한 일상 하나하나는 모두 사이트에 올릴 글의 소재다. 점심 메뉴나 주변 풍경을 찍은 뒤 간단한 설명을 곁들이면 게시물 하나가 완성된다.
지금은 ‘철이 들어’ 혐오발언성 글을 쓰지 않지만 20대 중반만 해도 A씨는 ‘내일이 없는’ 글을 주로 올렸다. 여성혐오나 지역 비하 글을 올려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주로 ‘틀딱’(노인 비하), ‘생리충’(여성 비하), ‘맘충’(유부녀 비하), ‘전땅크’(전두환 별칭), ‘원조가카’(박정희 별칭), ‘홍어’(지역 비하) 같은 단어를 즐겨 사용하며 극우 인터넷 문화에 위화감 없이 녹아들었다.
유년기와 청년기에 겪어야 했던 삶의 파고와 외로움은 A씨를 극우 인터넷 문화로 이끌었다.
A씨의 가정환경은 불우한 편이었다. 지금은 별거 중인 부모님은 A씨가 어릴 때부터 돈 문제 등으로 자주 다퉜다. 학교에서는 마르고 자그마한 체구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기 일쑤였다. A씨는 자연스레 남들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있는 게 더 익숙하고 편한 성격이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살 무렵 경남의 한 전문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입학 한 달 만에 자퇴했다. 기숙사 집단생활을 A씨는 견딜 수 없었다.
이후 도망치듯 군에 입대했으나 4일 만에 퇴소했다. 이후 약 1년 반 동안 주유소 아르바이트 등으로 돈을 벌어 생활했다.
우울증은 이 시기에 찾아왔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못난 놈’이라는 부모님의 질책은 밤에 잠이 들 수 없을 정도로 큰 스트레스였다.
A씨는 결국 반쯤 떠밀려 군에 다시 입대했다. 군 생활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관심사병’으로 낙인찍히고 동료들로부터 ‘기수 열외’를 당했다.
군을 제대한 A씨는 24살에 다시 창원의 한 전문대학교에 입학했으나 2학년 2학기에 졸업을 앞두고 다시 자퇴했다. ‘이번엔 끝까지 버텨보자’고 마음먹었으나 출구를 눈앞에 두고 무너졌다.
“인터넷에 청년실업률이 11%를 넘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거나 나 같은 N포 세대 20대 청년들이 취업난 등으로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기사가 쏟아집니다. 그렇다고 누구하나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요. 다들 제 앞가림 하기에 급급한 시대입니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요. 극우 인터넷 사이트에는 저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연스레 서로의 처지를 공감하며 그 문화에 젖어드는 겁니다.”
정신분석학자들의 말처럼 우울증은 상실감에 대한 반응이었다. 친구, 연인, 돈, 성취감, 자존심 등 자신이 잃어버린 것에 대한 피해의식과 자격지심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는 결과만 불렀다.
극우 인터넷 사이트를 접한 것은 이 무렵이었다. 적어도 이 공간에서는 ‘타의에 의해 낳음 당했다’는 울분과 세상·부모에 대한 원망을 원 없이 쏟아낼 수 있었다.
점차 그의 생각과 가치관은 이분법적으로 견고하게 구축됐다. 흙수저와 금수저, 잡아먹는 자와 잡아먹히는 자, ‘일베’와 ‘메갈’, 전라도와 경상도.
자신을 ‘강제당한 N포 세대’라 생각하는 A씨는 생각과 실천으로 세상에 맞서거나 저항할 의지가 없다. 흙수저로 태어나 노력 없이 산 잘못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A씨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하지 않은 23% 중 한 명이다. 그저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햄릿처럼 쓸쓸한 독백만 읊조릴 뿐이었다.
‘잔인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묵묵히 참고 견딜 것인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인 줄 알면서 밀려오는 고해의 파도에 맞서 결연히 싸우다 쓰러질 것인가.’
A씨는 망설임 없이 전자를 택했다. 힘과 능력이 없는 자는 ‘다른 삶’을 꿈꿀 권리마저 박탈당하는 게 현실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정권이 바뀐다고 나 같은 ‘고졸’이 갑자기 사회에서 대우받을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종 취업상담도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아니라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까지 포용하는 제도적 기반을 닦아야 ‘자발적 일베충’과 같은 청년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저처럼 인생을 자포자기하는 청년이 줄어드는 시대가 빨리 왔으면 합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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