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술 끊어 삶 찾았다… ‘자살아파트’가 사랑 공동체로

[단독] 술 끊어 삶 찾았다… ‘자살아파트’가 사랑 공동체로

홍인기 기자
홍인기 기자
입력 2017-03-16 23:14
수정 2017-03-17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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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 임대아파트의 기적

“술에 기대서 살 때는 동네 사람들이 ‘무서운 할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집, 슈퍼마켓, 놀이터 등 장소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을 먹고 고성을 지르거나 싸웠으니까요. 그런데 상담과 치료를 받고 봉사를 시작하니 피하기만 하던 사람들이 먼저 와서 인사를 건네요. 다시 내 삶을 찾은 기분입니다.”
서울 마포구 영구임대아파트의 입주민 중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난 이들이 꾸린 봉사단체인 ‘사랑회’ 회원들이 지난 15일 아파트 조경에 사용할 대형 나무 화분을 만들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서울 마포구 영구임대아파트의 입주민 중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난 이들이 꾸린 봉사단체인 ‘사랑회’ 회원들이 지난 15일 아파트 조경에 사용할 대형 나무 화분을 만들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만난 조현수(65)씨는 자신과 같이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난 주민들과 대형 목재 화분을 만들고 있었다. ‘사랑회’란 이름의 이 봉사단체는 ‘자살아파트’라 불리던 이곳을 ‘사랑아파트’로 바꾸는 역할을 했다. 늘 주민들을 괴롭히던 알코올 중독자들이 모여 아파트 곳곳의 조경을 다듬고 놀이터를 고치고 안내 팻말을 만드는 등 봉사를 하면서 공동체는 자연스레 복원됐다.

이날은 1시간 만에 목재 화분 3개가 완성됐다. 조씨는 “아파트 입구 화단에 놓아둘 예정인데 꽃피는 봄이 되면 주민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씨가 술을 끊는 노력을 시작한 건 5년 전인 2012년이다. 그해 7월부터 불과 4개월 동안 이 아파트에서 9명이 자살했다. 이런 비극이 빈곤과 가정 불화로 인한 알코올중독 및 우울증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서울시 등은 알코올 의존도가 높은 입주민에게 상담과 교육을 펼쳤다.

김남훈 마포구 정신건강증진센터 복지사는 “상담 초기에는 사회복지사나 상담사가 집 안에 발을 들여놓기는커녕 욕만 먹고 문전 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며 “대부분이 자신의 알코올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지속적인 관심에 술독에 빠져 살던 주민들이 밖으로 나왔다. 현재 16명의 회원 중 5명은 완전히 술을 끊었고, 11명은 음주량과 횟수를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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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가운데 조씨를 포함한 8명은 2015년부터 봉사를 시작했다. 단지에 버려진 폐자재를 이용해 곳곳에 휠체어 진입로를 제작한 게 첫 작품이었다. 이후 아파트 안내 팻말과 유치원 텃밭의 펜스를 세웠고, 단지 앞에 간이 탁자 등도 만들었다. 지난해 9월부터 알코올 치료를 받고 있는 이재의(68)씨는 6개월째 금주 중이다. 그는 간암 수술 뒤에도 매일 술을 마실 정도로 알코올의존증이 심했다. “눈 떠 보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고, 길거리에 널부러져 있던 일도 많았습니다. 모임에 나오면서 쓸모 있는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고, 이제는 술을 끊고 동네를 위해 일하는 데 시간을 씁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와 서울시 정신건강증진센터는 팀을 구성해 심리치료를 한다. 김순덕 상담가는 “가정 불화나 경제 문제 등으로 술에 의지하기 시작하면 의지만으로 벗어나기 어려운데 집 밖에도 못 나오던 사람들이 스스로 봉사활동까지 하니 대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입주민 김모(56·여)씨는 “이제 동네가 술 때문에 시끄럽지 않다. 오히려 아파트 이곳저곳을 꾸며준 덕분에 분위기도 밝아졌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고위험 음주율은 13.3%에 이른다. 고위험 음주란 1회 평균 7잔(여성 5잔) 이상씩 주 2회 이상 술을 마시는 상태로 일반 음주자에 비해 건강, 범죄, 가정, 경제,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길 확률이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 범죄자 가운데 술에 취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2010년 17.0%에서 2015년 26.4%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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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2017-03-17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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