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산불, 13년 전과 발화 시기, 위치, 밤새 확산 방향 ‘판박이’
“13년 전에도 바람이 워낙 우악스럽게 불어 95㏊의 산림을 삽시간에 태웠는데…당시 악몽이 되살아는 듯해 밤새 노심초사했습니다.”강원 강릉 옥계에서 발생한 산불이 이틀째 이어지면서 마을 주민들은 민가 4채를 집어삼킨 13년 전 산불 악몽이 떠올라 몸서리를 쳤다.
산불 이틀째인 10일 오전 10시 30분 꼬박 하루 만에 75㏊의 산림을 태우고 완전 진화됨에 따라 주민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9일 오전 옥계리 산계리 인근 야산에서 시작된 산불은 산계리를 태우고 저녁부터 북동리와 낙풍리, 현내리로 번졌다.
이 때문에 동네 주민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민가로 불이 넘어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당시 순간 최대풍속은 초속 14.6m였고, 밤에도 평균 초속 6∼7m의 강풍이 쉬지 않고 불었다.
산계 1리 주민 10여 명은 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최초 발화 지점에서 3㎞ 떨어진 마을회관 뒷산 쪽으로 번지자 집을 비우고 한때 대피하기도 했다.
13년 전 산불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산계 1리 주민 신우승(68) 씨는 “바람이 어찌나 우악스럽게 불던지. 아이고∼불씨가 수백m를 건너뛰는 도깨비불 탓에 확산 속도도 엄청나게 빨랐다”며 “13년 전 큰 산불 났을 때 생각이나 겁이 다 나더라니까”라고 혀를 내둘렀다.
이어 신 씨는 “당시에는 40∼50년생 아름드리나무가 빼곡히 들어 차 있었는데 모두 타고 지금은 새로 조림을 해서 그나마 10년생 미만의 작은 나무들뿐”이라며 “그때와 비교하면 이번 바람은 다소 약해 그나마 피해가 작은 듯하다”고 말했다.
불은 산 중턱을 타고 민가와 불과 200∼300m 거리까지 내려왔지만, 진화 당국이 저지선을 구축한 덕에 민가 피해는 없어 주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불이 난 속칭 ‘금단이골’은 13년 전인 2004년 3월 16일 밤에도 큰 산불이 났다.
당시 불은 15시간여 만에 완전진화 됐지만, 임야 95㏊가 소실되고 가옥 4채가 불에 타 1명의 이재민을 났다.
또 116가구 305명의 주민이 마을회관 등으로 긴급 대피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밤사이 초속 15m의 강풍이 불었다. 불은 강풍을 타고 북동쪽으로 번져 옥계면 현내리 라파즈 한라 시멘트 공장까지 위협하는 등 기세가 대단했다.
이번 강릉산불도 13년 전 만큼의 강풍은 아니었지만, 초속 6∼7m의 강풍이 밤사이 불어 북동쪽으로 번졌다.
이 때문에 북동리와 낙풍리, 현내리 주민들도 긴장감 속에 밤잠을 설쳤다.
이명수(61) 낙풍2리 이장은 “마을 주민들이 대부분 70∼80대 노인인 탓에 초저녁부터 대피할 수 있게끔 만반의 준비를 해달라. 마을회관이나 마을 안쪽 집들로 피신할 수 있는 준비를 해달라”고 방송했다.
이 이장은 “나도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아침에 마지막으로 불을 봤을 때 민가와 거리가 불과 200∼300m에 불과했다”며 “저지선이 없었다면 큰일 날뻔했다”고 말했다.
낙풍2리 주민 김모(49·여) 씨는 “불이 갑자기 넘어와서 정말 무서웠다. 동네 전체가 화목 보일러 옆에 있는 느낌이었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말했다.
김 씨는 “주민들 모두 뜬눈으로 지새우고, 특히 노인분들이 많이 놀랐다”며 “이제야 하늘이 보이는 것을 보니 많이 진화된듯하다”고 안도했다.
임재영(67) 현내3리 이장도 “산과 가까운 민가는 수백m 앞까지 불이 내려왔다”며 “날이 어두워지고 나서는 전문 진화인력 외에는 접근하지도 못할 정도로 긴박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13년 전 대형산불을 겪었던 주민들은 이번 산불이 시기나 발화 위치는 거의 비슷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때 당시에는 바람이 너무 강해 마을까지 내려왔고 이번에는 바람이 잦아든 덕에 피해가 없었으며, 대응진화도 잘 됐다고 입을 모았다.
임 이장은 “13년 전에는 짐을 챙길 새도 없이 마을회관으로 대피해 발만 동동 굴렀다”며 “시간상으로는 거의 20시간 넘도록 탔지만, 어제는 밤부터 바람이 잦아든 덕에 그나마 이전 산불보다 피해가 덜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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