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급 동의보감·대명률, 어떻게 장물업자 손에 넘어갔나

국보급 동의보감·대명률, 어떻게 장물업자 손에 넘어갔나

입력 2016-11-03 17:07
수정 2016-11-03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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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90년대 전국에 도굴꾼 득실”…도난문화재 양·종류 정확히 몰라

조선시대 최고 명의 허준이 저술한 동의보감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등장할 정도로 유명하고 가치가 높은 문화재다.

그런 동의보감이 박물관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도난당해 2천만원에 거래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문화재 도난과 거래 과정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3일 도굴꾼과 문화재 장물 매매업자 등을 수사해 총 18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도난 문화재 3천800여점을 회수했다고 밝혔다.

이중 동의보감 초판본과 조선 초기 명나라에서 만들어져 조선의 법률 제정에 영향을 끼친 ‘대명률(大明律)’이 발견돼 눈길을 끌었다.

동의보감은 25권 중 22권이 국보 319-1∼3호로 지정된 동의보감 초판본과 같은 판본이고, 대명률은 현재 중국에 남아있는 것보다 발간 시기가 빠른 것으로 각각 확인됐다.

이런 문화재들이 대체 어떤 경로로 도난당해 불법 거래됐을까?

이번에 회수된 동의보감은 약 20년 전 경주의 한 고택에서 도난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경주 일대에서는 개발로 고택 철거가 한창이었다. 절도범 김모(57)씨는 고택들이 철거를 앞두고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울진과 경주 일대 철거를 앞둔 고택들을 털고 다녔다.

옛날 책, 도자기 등 돈이 될만한 물건은 모두 쓸어 담았던 김씨는 마대자루에 문화재들을 채워 한 자루당 10만원에 팔았다고 한다.

동의보감 역시 이렇게 김씨의 손에 들어간뒤 1999년 승려 출신이자 문화재 매매업자 이모(60)씨에게 팔렸다. 동의보감의 가치를 알아본 이씨는 이를 경북에 있는 한 사찰에 2천만원에 되판 것으로 확인됐다.

산성과 산에 있는 옛날 묫자리 역시 문화재의 보고(寶庫) 였다.

경찰에 따르면 도굴꾼들은 밤마다 산에 올라 산성과 묫자리 등을 파헤쳤다고 한다. 특히 삼국시대 만들어진 산성 주변에는 전사한 군인과 함께 매장된 도자기 등 유물이 많았다.

한 경찰 관계자는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전국에 도굴꾼들이 득실거렸다”고 전했다.

주인에게 문화재를 팔라고 설득한 후 응하지 않으면 밤에 몰래 가서 훔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문화재는 주로 다락방 한구석에 보관되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들은 도둑맞은 사실조차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도굴꾼과 절도범들은 이렇게 훔친 문화재를 헐값에 매매업자들에게 넘겼다.

매매업자들은 다량으로 문화재를 사들여 이중 가치 있는 것을 골라 박물관 운영자나 부유한 수집가 등에게 팔았다. 상당수는 해외로 넘어가기도 했다.

이렇게 도난, 거래된 문화재의 양과 종류 등에 대해서는 관계 당국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문화재의 경우, 국내외를 막론하고 개인이 소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공개하거나 발표하지 않는 이상 소재를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검거된 문화재 절도범들 역시 대부분 훔친 문화재를 자기 주거지에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년간 보관하다 장물 시장에 내놓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이 이번에 도난문화재 3천800여점을 회수한데는 도굴꾼의 역할이 컸다. 이제 70~80대 고령인 도굴꾼들이 경찰의 설득에 관련 첩보를 제공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어차피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받지 않으니 나라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문화재만이라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해 정보를 수집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경찰과 문화재청 등 관계 기관이 도난 문화재를 되찾으려 노력하고 있으나 과거 활동하던 도굴꾼 등 상당수가 고령으로 사망한 경우가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과 문화재청이 경매 사이트 등을 수시로 확인해 문화재 도굴과 도난 문화재 거래는 많이 줄었다”며 “하지만 이미 도굴되고 거래된 문화재를 찾는 데는 시간이 많이 지나 추적이 힘든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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