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아닌 판매대금 횡령해 비자금 조성”…대법, 서울고법 돌려보내
대법원이 1천3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호진(54) 전 태광그룹 회장의 재판에서 횡령액을 다시 산정하라고 판단했다. 횡령죄 자체는 여전히 성립하며 2심은 그 대상을 법리적으로 잘못 봤다는 취지다.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30일 이 전 회장의 상고심에서 징역 4년6월과 벌금 10억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전 회장은 실제 생산량보다 적게 생산된 것처럼 조작하거나 불량품을 폐기한 것처럼 꾸미는 방식으로 계열사 생산품을 빼돌려 거래하는 이른바 ‘무자료 거래’로 195억8천545만원을 횡령한 혐의(업무상 횡령) 등이 2심에서 유죄로 인정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부분에서 2심 판단과 달리 횡령액을 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지배하는 태광산업에서 생산하는 섬유제품 자체를 횡령할 의사로 무자료 거래를 지속한 것이 아니라, 그 섬유제품의 판매대금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그 비자금을 개인적으로 횡령할 의사로 무자료 거래를 지속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횡령의 객체·대상을 생산품 그 자체로 볼 것이 아니라 생산품을 판매한 대금으로 보고 횡령액을 정하라는 의미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횡령죄 성립을 부정하는 취지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횡령의 객체를 섬유제품이 아닌 판매대금이라고 판단한 만큼 부가가치세 포탈 및 법인세 포탈 부분도 다시 들여다보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원심처럼 횡령 대상을 섬유제품으로 볼 경우 피해자인 회사가 회장에 의해 이뤄진 횡령 거래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납부할 의무를 부담하게 돼 부가세 포탈 부분을 무죄로 판단해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며 “대법원 판결에 따라 논리적 모순 없이 횡령죄와 부가가치세 포탈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른 혐의에 대해선 원심 판단을 모두 받아들였다.
이 전 회장은 직원 급여를 허위로 회계처리하는 등 회삿돈 13억8천192만원을 챙긴 혐의(업무상 횡령)를 받았다.
또 손자회사의 주식을 자신과 아들에게 저가로 매도하게 하는 등 그룹에 818억6천433만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업무상 배임)와 CJ미디어의 ‘채널 배정 청탁’을 들어준 대가로 이 회사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배임수재) 등도 받았다.
1심은 209억2천572만원 횡령과 액수미상의 배임, 10억9천781만원 탈세 혐의를 인정하고 나머지 혐의는 면소하거나 무죄로 판단해 징역 4년6월과 벌금 20억원을 선고했다.
2심은 대한화섬 관련 비자금 조성 혐의를 범죄사실에서 제외하고, 일부 배임을 무죄로 판단해 징역 4년6월을 선고하고 벌금을 20억원에서 10억원으로 감형했다.
이 전 회장은 간암과 대동맥류 질환을 이유로 2012년 6월 병보석이 허락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