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블로그] 우리들의 일그러진 ‘민원 전쟁’

[현장 블로그] 우리들의 일그러진 ‘민원 전쟁’

김희리 기자
김희리 기자
입력 2016-07-19 22:50
수정 2016-07-20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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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선 “에어컨 꺼라, 켜라”… 버스정류장선 “장애인 안내 음성 줄여라, 높여라”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여름이 되면 소소하지만 치열한 편익 싸움이 곳곳에서 벌어집니다. 지하철에선 냉방온도를 두고 “올려라”, “내려라” 아우성이 납니다. 버스정류장에선 인근 주민과 시각장애인들이 맞부딪칩니다. 주민들은 안내 음성이 커서 시끄럽다며 소리를 줄여 달라고 줄민원을 넣습니다. 행여 버스를 놓칠지도 모르는 시각장애인들에겐 가슴 철렁한 주장입니다. 당연히 안내 음성을 줄여선 안 된다고 민원을 넣습니다.

골목길이 어두워 밤에 지나기 무섭다는 여성들과 빛 공해 때문에 잠들기가 어렵다는 주민들의 줄다리기도 승부가 나질 않습니다. 한여름, 곳곳에서 벌어지는 ‘내 위주’의 편익 싸움에 대해 들여다봤습니다.

19일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지하철 냉난방과 관련해 5만 9724건의 민원이 접수됐답니다. 이 가운데 4만 7754건(80.0%)이 4~6월에 집중됐습니다. 4월부터 무슨 냉방이냐고요?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더위에 취약한 승객들이 제기하는 봄철 냉방 민원이 한여름 못지않게 많다고 합니다. 올해 상반기 중에도 5월(1만 9630건)의 민원 건수가 가장 많았다고 하네요.

“여름에는 대개 정부의 권장 실내온도인 26~28도보다 2도가량 낮게 냉방을 운영합니다. 그러나 한 객실에서 춥다는 민원과 덥다는 민원이 동시에 들어올 때가 많아요. 양쪽 모두 짜증이나 화를 내시는 경우도 꽤 있고요. 춥고 덥고는 개인차인데, 난감하죠.” 한 기관사가 답답해하며 토로한 이야기입니다.

서울 강남구 세곡중학교 인근 버스정류장에서는 지난해 여름부터 1년 가까이 ‘민원전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인근 주민들은 버스 도착정보 단말기의 안내 음성이 시끄럽다며 민원을 자주 제기하는데 특히 창문을 열고 지내는 여름에 민원 건수가 부쩍 늘어난답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은 버스 안내 음성이 절실합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각장애인이 ‘안내 음성이 안 들린다’고 하면 음량을 높였다가 주민의 소음 민원이 들어오면 다시 낮추는 ‘핑퐁게임’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6단계로 음량 조절이 가능한데 해당 버스정류장의 경우 지난주에 시각장애인의 민원 때문에 5단계로 소리를 높였다가 다시 주민 민원에 4단계로 내렸다고도 했습니다. 사람에 따라 청력이 다르니 적정선을 찾기는 매우 힘든 상황입니다.

서울 동작구의 한 골목길 가로등도 갈등의 대상입니다. 주민 이모(33·여)씨는 “매일 다니는 골목길이 어두워서 위험하다고 경찰서에 신고했더니, 경찰은 구청과 논의 끝에 인근 주민들에게 빛 공해가 될 수 있어 조도를 높이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답했다”며 “나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간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만 가림막을 이용하면 어떨까 생각해 봤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편익 싸움은 법적으로 해결하기는 소소해 보이지만 생활에는 큰 불편을 발생시키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양측 민원인의 중간에 낀 지하철 기관사, 경찰, 구청 공무원 등은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양측 민원인들의 주장대로 핑퐁게임을 하다 보니 행정력이 낭비되고, 민원을 반복하는 양측도 오히려 더 큰 불편을 겪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결국 이웃에 대한 양보와 배려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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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2016-07-2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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