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자녀살해’…자녀관 바꾸고 법·제도 개선 필요

‘반복되는 자녀살해’…자녀관 바꾸고 법·제도 개선 필요

입력 2015-07-26 14:50
수정 2015-07-2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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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은 소유물’ 인식 버려야…”비속살해도 가중 처벌해야”

부모가 애꿎은 자식을 살해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동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정작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는 범죄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반복된다.

청주시 6세 남아 살해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아이의 어머니는 양모(34)씨는 25일 경찰에 자수, 때늦은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양씨는 아들의 보육문제로 말다툼하다가 집을 나간 남편에 대한 분노 때문에 이달 19일 아들을 목 졸라 살해했다.

양씨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배경에는 가정 불화와 우울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처럼 그간 부모가 자식을 살해한 사건에서는 가정 불화나 사업 실패·실직으로 인한 생활고, 우울증 및 불안감 등이 주된 원인으로 나타났다.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는 우리 사회의 자녀관도 영향이 크다.

◇ 생활고·우울증·학대…잇따르는 자녀 살해

자녀 살해는 연평균 30여건씩 발생한다. 이중 절반가량은 범행 후 부모가 자살해 ‘동반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동반자살도 엄연히 부모에 의한 명백한 살인이다.

올해 1월 발생한 서초동 세모녀 살해사건은 가부장적인 가장이 생활고와 우울증을 겪었을 때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에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다.

주식 투자에 실패한 강모(48)씨는 아내(44)와 중학생 큰딸(14), 초등학생 작은딸(8)을 죽였으나 정작 자신은 자살에 실패한 뒤 도망쳤다가 붙잡혔다.

강씨는 “마이너스 인생이 시작될 것 같은데 혼자 가면 남은 처자식이 불쌍한 삶을 살 것 같아 같이 가려 했다”고 털어놨다.

경남 거제시에서는 2월 30대 남성이 생활고와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아내와 어린 자식 3명을 살해한 뒤 스스로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3월에는 뇌성마비를 판정받은 자식을 살해하려 한 30대 여성과 사채를 감당하기 어려워 7세 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30대 여성이 잇따라 경찰에 검거됐다.

같은 달에는 2013년 생활고로 두 자녀 죽인 뒤 암매장했던 30대 여성이 2년 만에 충남에서 잡히기도 했다.

6월에는 30대 여성이 어린이집에서 자신을 따라나서지 않는다는 이유로 30개월 친딸을 밀대걸레봉 등으로 폭행해 살해하는 끔찍한 일도 있었다. 남편도 이를 방관하고 울면서 자신에게 오는 딸을 수차례 때렸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적 위기, 생명경시 풍조 외에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분노 조절 문제가 자녀 살해 등 극단적인 상황을 낳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 경제 위기·가부장적 문화 작용…사전에 방지해야

우리 사회 양극화 심화로 인한 경제난 때문에 겪는 생활고는 자녀 살해의 결정적 요인 중 하나다.

당장 먹고 사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위기상황은 생명 존중 등 지켜야 할 본연의 가치들을 지키는 윤리의식을 약하게 한다.

김호기 교수는 “한국 사회의 지속적인 저성장 상황 때문에 경제 위기가 구조화되면서 사람들이 극단적인 곳까지 내몰리고 있다”며 “경제 위기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녀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가부장적인 사회문화와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크게 작용한다.

김 교수는 “아이를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에 ‘내가 없으면 아이가 어떻게 살까’는 생각에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라며 “서로가 서로에게 속해있다고 생각하는 동아시아 가족주의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자녀보다 부모를 더 중시하는 가부장적인 문화는 법에도 반영됐다.

한국 형법은 자신 또는 배우자의 직계 부모를 살해한 행위(존속살인)에 대해 일반적인 살인의 형량(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보다 높은 형량(사형·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을 적용한다.

반면 자식을 살해한 행위(비속살인)에 대해서는 별도의 가중 처벌 규정이 없어 일반살인 조항이 적용돼 처벌된다. 이에 따라 존속살해만 가중 처벌하는 조항이 위헌이라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고 비속살해도 가중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영아를 살해했을 때는 최고 형량이 징역 10년으로, 다른 살인보다 형량이 가볍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가족 살해에 법을 똑같이 적용하는 나라도 있겠지만 각국 국민의 공감대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면서도 “한국에서 존속살해는 형량을 가중하면서 비속살해는 가중하지 않는 것은 특이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법을 강화하려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일각에서는 사후 처벌을 강화하는 것보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헌주 보건복지부 인구아동정책관은 “한번 손댔는데 사망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지속적인 학대가 사망을 낳는다”며 “학대가 일어날 경우 원인부터 재발까지 전 과정을 모니터링하는 제도와 아동 학대를 미리 알아차릴 수 있는 교사나 의사 등 관계자 신고제를 강화해야 이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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