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인생상담, 고민상담이 많이 이뤄졌던 것 기억나실 겁니다. 선데이서울도 전문가 상담코너들을 여럿 운용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1972년부터 연재했던 ‘人生극장: 법률상담’ 코너였습니다. 선데이서울에 전달됐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인생 고민과 법률가의 해법을 소개합니다. 40여년 전에 제시됐던 전문가 조언들은 현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여섯번째 이야기는 다른 여인과 하룻밤을 보내고도 아내에게 떳떳한 한 남성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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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58. <人生극장 법률상담 (6)> 아내가 축하하는 여인과의 관계…10년 알아눕자 아내 구실 못한다고 (선데이서울 1972년 9월 10일)
“남자라면 이가 갈렸어요. 모두 도둑놈으로만 보이고 치사하고 더럽고...”
“그럼 지금 나는 어때?”
“......”
“응, 나는 어떠냐 말야?”
“두고 봐야 알죠.”
밤은 깊어 간다. 우이동 산 골짜기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가 두 기구한 남녀의 운명을 노래하듯 구성지게 울어댄다. 남자가 일어서서 불을 껐다. 달빛이 창호지를 푸르스름하게 비춘다.
“지금부터 두고 보면 알 거야. 자, 얼굴을 들고 나를 봐요.”
“아이 부끄러워요.”
남자의 큼지막한 손바닥이 여자의 가슴을 덮는다. 여자는 연약한 짐승처럼 부르르 경련한다.
“진흙 속의 진주였어.”
“뭐라구요?”
“진흙 속에 묻혀 있던 진주였단 말야.”
“거짓말.”
“글쎄 두고 보라구.”
여자는 싫지가 않은 듯 웃음마저 띤 얼굴이다.
남자는 무척 섬세하고 침착하게 여자를 다루어 나간다. 이윽고 여자는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남자의 손을 거칠게 잡아 끈다.
우이동 어느 구석의 방갈로에는 이렇게 광란의 하룻밤이 이튿날 해가 뜨도록 계속되었다. 1972년 4월 중순 어느 날이었다.
아침이 되자 정학소(47·가명)는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었다.
9시 17분, 아무리 서둘러도 10시 전까지는 회사에 나가기 어려웠다. 이부자리 밖으로 나와 있는 김창순(31·가명)의 눈부신 허벅지가 강렬하게 시선을 찌른다.
“벌써 나가세요?”
“벌써가 뭐야? 10시 전까진 틀렸어.”
“기왕 늦었으니 서두를 것 없이 전화나 하시고 나가세요.”
“하긴 그렇군.”
●황홀한 방갈로의 하룻밤
학소는 다시 주저앉아 회사와 집에 전화를 부탁하고 창순의 보드라운 귓바퀴를 애무해 준다.
“지난밤엔 너무 잔인했어요.”
“그 정도는 되어야지. 내가 뭐 토끼 새낀가?”
토끼 새끼냐는 말에 그녀는 이불을 젖히며 폭소한다. 학소는 그녀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히며 장난을 청한다. 창순은 몸 둘 곳을 모르며 방바닥을 뒹군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먼저 나온 곳은 그의 집. 마침 아내가 받았다.
“당신이우? 어때요? 재미 좋았수?”
“아니 뭐 별로, 당신은 별일 없었지? 대소변은 어떻게 했소?”
“어머 당신 목소리 들으니 괜찮았던 모양이에요. 김창순이란 애, 쓸만 합디까?”
“글쎄, 지난밤에 당신 고생 안 했느냔 말야.”
“별일 없었어요. 잠이 안 와서 책 좀 보다가 수면제를 할 수 없이 먹었죠.”
“저런, 수면젤 치우고 나온다는 걸 깜빡 잊었군.”
“창순이는 좋았죠? 회사엔 내가 연락할 테니 당신 거기서 점심 잡숫구 나오세요.”
“지금 나가려는 판이야.”
“글쎄, 내가 전화 걸 테니 꼭 점심하고 나오세요. 뭣 하면 저녁때 나오셔도 좋아요.”
“알았어, 회사에 나가 전화하지.”
기묘한 대화가 끝났다. 학소는 교환양에게 회사전화신청을 취소하고 주저앉았다.
담배를 피워 문다. 담요를 가슴쯤까지 두른 창순이 일어나 앉는다. 착하디착한 두 눈에선 금방 눈물이 쏟아져 내릴 것 같다.
학소는 일어나서 창문을 연다. 싱싱한 풀 내음 섞인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 마신다. 창순은 일어서서 그의 곁으로 가 고개를 기댄다. 양복까지 입은 남자의 뒷모습과 담요를 앞으로만 둘러 미끈한 둔부의 곡선이 삼삼하게 뻗어내린 그녀의 뒷모습은 묘한 조화를 이룬다. 학소는 돌아서며 창순을 와락 껴안는다. 담요가 바닥에 떨어지고 식었던 그들의 피가 다시 끓어오른다.
학소는 L회사의 엘리트 부장. 창순은 그가 단골로 다니는 실비 대폿집 얼굴마담이다. 2주일 전 창순이 연탄가스 중독으로 입원하게 되자 그는 꽃다발을 사들고 병문안을 갔었다. 너무도 외로웠던 탓일까. 창순은 3년 동안 굳게 닫아 두었던 마음의 문을 손쉽게 열어 버렸다. 그러니까 우이동 방갈로의 정사는 두 번째가 된다. 첫 번째 정사를 치르고 난 학소는 아내에게 그 사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들려주었다. 아내는 깡마른 손으로 남편의 정사를 축하해주었다. 결혼생활 30년 동안 20년을 가까스로 아내 역할을 해주었고, 10년 동안은 내리 병석에 누워 있는 처지. 처음에 학소는 아내를 위로하기에 바빴고 다음엔 아내가 그의 성생활을 자위로 도와주었다. 그러나 한두 번이었지 자위로써 학소의 만족을 채워줄 순 없었다. 결국 아내 이정애(가명)는 남편에게 애인을 구하도록 권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도 쉬고 그녀와 함께
처음엔 사뭇 거절해 왔던 학소는 자기 나름대로 여자를 구해서 아내에게서 풀지 못한 욕망을 풀곤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혼연일체가 되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 했다.
이럴 때 나타난 창순은 그와 그의 병약한 아내에게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존재였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었다.
애인에게 배신당한 과거가 있었던 창순은 학소의 참을성 있는 성격과 다사로운 인품에 흠씬 빠져들어 갔다.
이 기묘한 두 남녀의 생활을 법률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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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우는] 고소 성립 안 되나 불순관계는 청산해야
정씨와 그의 아내 이여인은 서로 아직도 존경하고 부부로서 정상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여기에 김여인이 등장하여 정씨의 불행한 성생활을 만족하게 처리해 주고 있다 하겠는데, 이것은 도덕적으로 보면 비난받을 수도 있고, 오히려 동정의 여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법률적으론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겠습니다. 왜냐하면 간통죄는 친고죄이므로 아내 이여인이 묵인하고 고소하지 않는 이상 법률이 여기에 개입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내가 남편의 외도를 권유까지 한 이상, 고소도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정씨와 김여인의 비정상적인 관계가 합리화될 수는 없습니다.
특히 김여인은 아직도 개가하면 충분히 행복한 가정을 영위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닙니까? 김여인은 이런 생활을 청산하고 새 출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여인도 여인인 이상, 여성으로서의 감정이 없다 하지 못할 것이니 정씨도 불순한 생활을 청산하고 깊이 앞날을 생각하여 신중한 처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정범석 건국대 시민법률상담소장>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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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이 기사는 2015년 4월 29일 기사입니다.
여섯번째 이야기는 다른 여인과 하룻밤을 보내고도 아내에게 떳떳한 한 남성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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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58. <人生극장 법률상담 (6)> 아내가 축하하는 여인과의 관계…10년 알아눕자 아내 구실 못한다고 (선데이서울 1972년 9월 10일)
“남자라면 이가 갈렸어요. 모두 도둑놈으로만 보이고 치사하고 더럽고...”
“그럼 지금 나는 어때?”
“......”
“응, 나는 어떠냐 말야?”
“두고 봐야 알죠.”
“지금부터 두고 보면 알 거야. 자, 얼굴을 들고 나를 봐요.”
“아이 부끄러워요.”
남자의 큼지막한 손바닥이 여자의 가슴을 덮는다. 여자는 연약한 짐승처럼 부르르 경련한다.
“진흙 속의 진주였어.”
“뭐라구요?”
“진흙 속에 묻혀 있던 진주였단 말야.”
“거짓말.”
“글쎄 두고 보라구.”
여자는 싫지가 않은 듯 웃음마저 띤 얼굴이다.
남자는 무척 섬세하고 침착하게 여자를 다루어 나간다. 이윽고 여자는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남자의 손을 거칠게 잡아 끈다.
우이동 어느 구석의 방갈로에는 이렇게 광란의 하룻밤이 이튿날 해가 뜨도록 계속되었다. 1972년 4월 중순 어느 날이었다.
아침이 되자 정학소(47·가명)는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었다.
9시 17분, 아무리 서둘러도 10시 전까지는 회사에 나가기 어려웠다. 이부자리 밖으로 나와 있는 김창순(31·가명)의 눈부신 허벅지가 강렬하게 시선을 찌른다.
“벌써 나가세요?”
“벌써가 뭐야? 10시 전까진 틀렸어.”
“기왕 늦었으니 서두를 것 없이 전화나 하시고 나가세요.”
“하긴 그렇군.”
●황홀한 방갈로의 하룻밤
학소는 다시 주저앉아 회사와 집에 전화를 부탁하고 창순의 보드라운 귓바퀴를 애무해 준다.
“지난밤엔 너무 잔인했어요.”
“그 정도는 되어야지. 내가 뭐 토끼 새낀가?”
토끼 새끼냐는 말에 그녀는 이불을 젖히며 폭소한다. 학소는 그녀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히며 장난을 청한다. 창순은 몸 둘 곳을 모르며 방바닥을 뒹군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먼저 나온 곳은 그의 집. 마침 아내가 받았다.
“당신이우? 어때요? 재미 좋았수?”
“아니 뭐 별로, 당신은 별일 없었지? 대소변은 어떻게 했소?”
“어머 당신 목소리 들으니 괜찮았던 모양이에요. 김창순이란 애, 쓸만 합디까?”
“글쎄, 지난밤에 당신 고생 안 했느냔 말야.”
“별일 없었어요. 잠이 안 와서 책 좀 보다가 수면제를 할 수 없이 먹었죠.”
“저런, 수면젤 치우고 나온다는 걸 깜빡 잊었군.”
“창순이는 좋았죠? 회사엔 내가 연락할 테니 당신 거기서 점심 잡숫구 나오세요.”
“지금 나가려는 판이야.”
“글쎄, 내가 전화 걸 테니 꼭 점심하고 나오세요. 뭣 하면 저녁때 나오셔도 좋아요.”
“알았어, 회사에 나가 전화하지.”
기묘한 대화가 끝났다. 학소는 교환양에게 회사전화신청을 취소하고 주저앉았다.
담배를 피워 문다. 담요를 가슴쯤까지 두른 창순이 일어나 앉는다. 착하디착한 두 눈에선 금방 눈물이 쏟아져 내릴 것 같다.
학소는 일어나서 창문을 연다. 싱싱한 풀 내음 섞인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 마신다. 창순은 일어서서 그의 곁으로 가 고개를 기댄다. 양복까지 입은 남자의 뒷모습과 담요를 앞으로만 둘러 미끈한 둔부의 곡선이 삼삼하게 뻗어내린 그녀의 뒷모습은 묘한 조화를 이룬다. 학소는 돌아서며 창순을 와락 껴안는다. 담요가 바닥에 떨어지고 식었던 그들의 피가 다시 끓어오른다.
학소는 L회사의 엘리트 부장. 창순은 그가 단골로 다니는 실비 대폿집 얼굴마담이다. 2주일 전 창순이 연탄가스 중독으로 입원하게 되자 그는 꽃다발을 사들고 병문안을 갔었다. 너무도 외로웠던 탓일까. 창순은 3년 동안 굳게 닫아 두었던 마음의 문을 손쉽게 열어 버렸다. 그러니까 우이동 방갈로의 정사는 두 번째가 된다. 첫 번째 정사를 치르고 난 학소는 아내에게 그 사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들려주었다. 아내는 깡마른 손으로 남편의 정사를 축하해주었다. 결혼생활 30년 동안 20년을 가까스로 아내 역할을 해주었고, 10년 동안은 내리 병석에 누워 있는 처지. 처음에 학소는 아내를 위로하기에 바빴고 다음엔 아내가 그의 성생활을 자위로 도와주었다. 그러나 한두 번이었지 자위로써 학소의 만족을 채워줄 순 없었다. 결국 아내 이정애(가명)는 남편에게 애인을 구하도록 권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도 쉬고 그녀와 함께
처음엔 사뭇 거절해 왔던 학소는 자기 나름대로 여자를 구해서 아내에게서 풀지 못한 욕망을 풀곤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혼연일체가 되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 했다.
이럴 때 나타난 창순은 그와 그의 병약한 아내에게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존재였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었다.
애인에게 배신당한 과거가 있었던 창순은 학소의 참을성 있는 성격과 다사로운 인품에 흠씬 빠져들어 갔다.
이 기묘한 두 남녀의 생활을 법률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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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우는] 고소 성립 안 되나 불순관계는 청산해야
정씨와 그의 아내 이여인은 서로 아직도 존경하고 부부로서 정상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여기에 김여인이 등장하여 정씨의 불행한 성생활을 만족하게 처리해 주고 있다 하겠는데, 이것은 도덕적으로 보면 비난받을 수도 있고, 오히려 동정의 여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법률적으론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겠습니다. 왜냐하면 간통죄는 친고죄이므로 아내 이여인이 묵인하고 고소하지 않는 이상 법률이 여기에 개입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내가 남편의 외도를 권유까지 한 이상, 고소도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정씨와 김여인의 비정상적인 관계가 합리화될 수는 없습니다.
특히 김여인은 아직도 개가하면 충분히 행복한 가정을 영위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닙니까? 김여인은 이런 생활을 청산하고 새 출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여인도 여인인 이상, 여성으로서의 감정이 없다 하지 못할 것이니 정씨도 불순한 생활을 청산하고 깊이 앞날을 생각하여 신중한 처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정범석 건국대 시민법률상담소장>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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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이 기사는 2015년 4월 29일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