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별장 수색하려 하자 검찰 허겁지겁 ‘비밀방’ 공개, 검찰 돈가방 압수 사실도 경찰은 전혀 몰라
수사 당국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검거하지 못한 것은 검찰과 경찰의 협업 체계가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24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경찰이 인천지검과 유씨 검거 활동을 조율하기 위해 인천지방경찰청에 설치한 ‘경찰 총괄 TF’ 관계자는 23일 오전 유씨가 들고 다닌 것으로 알려진 돈 가방과 관련한 수사 상황을 공유해 줄 것을 검찰에 요청했다.
유씨가 지난달 12일 전남 순천 송치재 인근 밭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실이 확인됐지만 유씨가 지니고 다닌 것으로 알려진 돈 가방은 행방이 묘연해 타살 의혹이 제기된 터였다.
검찰은 이미 지난달 27일 유씨가 머물렀던 송치재 별장을 수색해 돈이 담긴 여행용 가방 2개를 발견해 놓았지만 이때도 경찰 관계자에게 “모르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 그날 오후 검찰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송치재 별장에서 유씨를 놓친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돈 가방도 공개했다.
검찰이 겉으로는 경찰과 유씨 검거를 위한 공조 수사를 한다고는 했지만 오히려 철저하게 정보를 숨겨왔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된 것이다.
검찰이 23일 갑자기 송치재 별장과 관련한 내용을 언론에 털어놓은 경위에 대해서도 경찰은 미심쩍은 눈길을 보내고 있다.
유씨의 도주 상황과 사인 등을 수사하기 위해 순천경찰서에 만들어진 경찰 수사본부는 그날 오전 송치재 별장을 수색하려고 검찰에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다.
동시에 경찰은 별장에서 유씨를 수행하다 구속된 신모(33.여)씨 등에 대한 조사를 하겠다고 검찰에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씨는 검찰에 송치재 별장 비밀방의 존재를 알려준 인물이다.
이 때문에 경찰이 별장을 수색하고 신씨 등을 조사하면 그동안 숨겨온 비밀방의 정체가 경찰을 통해 공개될 것을 우려해 검찰이 부랴부랴 언론에 먼저 자복을 한 것이 아니냐는 강한 의혹이 일고 있다.
검찰이 5월 25일 송치재 별장을 급습했을 때에도 검찰 수사관들만 별장을 수색하고 경찰은 철저히 소외됐다.
한 경찰관은 “수색에서는 검찰보다 경찰이 훨씬 전문성이 있지만 별장 수색에 전혀 참여하지 못했다”며 “건물을 수색할 때는 천장과 벽 등을 두드려보는 것은 기본 사항인데 검찰 수사관들이 이런 것을 잘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유씨 일가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직후부터 계속 “검찰이 고급 정보는 주지 않고 검문검색 등에 부려 먹기만 한다”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대해 그동안 경찰은 공식적으로는 검찰과 공조 수사가 잘되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수사가 어그러진 지금으로선 딱히 ‘불신 관계’를 숨기는 분위기도 아니다.
경찰도 할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경찰은 지난달 12일 변사체를 발견하고도 초동수사를 소홀히 해 단순 변사 사건으로 처리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검찰도 변사체와 관련한 정보를 제대로 접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여러차례 유병언에 대한 검거를 강조하면서 검찰과 경찰이 자신들의 공적으로 만들기 위해 상대방을 견제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두 기관이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린 이 사건에서 잠시라도 자존심 싸움을 거두고 진솔하게 수사 내용을 공유했더라면 눈앞의 유씨를 놓치는 것도, 이미 변사체로 발견된 유씨를 못 알아볼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만시지탄의 목소리가 높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