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항의로 다시 부착…”불법전단 맞다” 고집
16일 광주 북구 일곡동의 한 사거리 인근 전봇대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글이 붙어 있는 것을 경찰관이 ‘불법 전단’이라는 이유로 떼고 있다. 이 경찰관은 주민들의 요구에 다시 글을 제자리에 붙여 놓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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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에 붙은 이 대자보는 불법전단이니까 떼야죠.”
16일 오후 광주 북구 일곡동의 한 사거리.
사거리 앞 전봇대에는 최근 철도파업 등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아 화제가 된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와 유사한 내용의 글이 붙어 있었다.
현장을 찾은 기자들은 전봇대를 향해 연방 셔터를 눌렀고 광주 북부경찰서 일곡지구대 소속 경찰관 3명도 이곳을 찾아 글을 살폈다.
갑자기 한 경찰관이 A4용지 크기인 자보를 뗐고 이를 목격한 한 중년 남성이 “시민들 보라고 둔 것인데 왜 떼느냐”고 항의했다.
이 경찰관은 “전봇대에 붙은 대자보는 불법 전단”이라며 투명 테이프가 부착된 종이를 뗐으나 “상업 광고도 아닌데 읽어보게 놔둬야 하지 않느냐”는 시민들의 항의와 주위의 만류에 종이를 다시 제자리에 붙였다.
해당 경찰관과 동행한 다른 경찰관은 “우리도 상부에 보고를 해야 해서 그렇다. 사진을 찍어놨으니 일단 다른 조치는 하지 않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길에 뿌려진 전단이나 버스 정류장, 가로등, 전봇대 등에 붙어 있는 허가받지 않은 유인물은 모두 불법 전단에 해당하므로 단속 대상이 맞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직무를 수행한다는 경찰관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주민 윤모(59)씨는 “누구를 헐뜯고 비방하는 글도 아닌데 경찰관이 굳이 나서서 이 종이를 떼려는 모습이 시민의 눈과 귀를 막고 통제하던 몇십년 전을 떠오르게 해 씁쓸했다”고 말했다.
글 귀퉁이에 희미한 펜으로 ‘대한민국 평범한 고2 학생’이라고 적힌 이 글에는 ‘철도민영화로 인한 철도파업. 그분들을 보면서 부끄럽게도 저는 안녕했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어 ‘그리고 곧 의료보험 민영화.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가는데 몇십만원씩 내야 합니다. 이 때도 안녕할 수 있을까요?’라며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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